고현권 목사
옛날 임금이 거하던 대궐을 가리켜 구중궁궐(九重宮闕)이라고 합니다. 임금이 거하는 궁전 안으로 들어가려면 자그마치 아홉 겹의 문을 통과해야 한다는 뜻으로, 그만큼 궁궐의 규모가 어마어마하다는 의미도 들어 있습니다. 지금은 크기가 많이 줄어들었습니다만, 경복궁은 원래 7,481칸 규모의 큰 대궐이었다고 합니다. 물론 9,999칸을 자랑하는 중국의자금성의 규모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어마어마한 크기입니다. 절대왕정시대의 궁궐의 규모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오늘날 대다수의 나라의 대통령 관저 또한 상당히 큰 규모입니다.
지난 2월 3일에 Comstock 하원의원 사무실의 초청과 최인숙 권사님의 수고 덕분에 약 90명의 맥클린한인장로교회 성도들이 백악관(White House)를 관람하는 특별한 기회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한가지 놀란 것은 이곳에서 오랫동안 이민생활 했던 성도님들이나 2세 형제 자매들이 많이 눈에 띄었습니다. 물어보니 이 지역에서 오랫동안 살았지만, 백악관 안으로는 한 번도 들어가 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삼중의 신분검사 과정을 마치고 드디어 백악관 내부로 입성했는데, 이게 웬일입니까? 세계 최강대국인 미국의 대통령 궁이기에 굉장히 거대하고 화려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소박하고 평범하다는 것이었습니다. 다들 나름의 기대감을 가지고 왔다가 ‘이게 다야?’라는 약간의 실망감이 얼굴에 서려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백악관 관람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 백악관의 규모나 내부의 모습을 보고 다들 실망 내지 아쉬움을 금치 못하였을까?’ 이것은 그만큼 우리의 마음 속에 크기와 힘이 선이 되고, 아름다움이 된다는 이상한 판단기준이 자리를 잡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소박함과 평범함은 뭔가 모자라고 부족한 것으로 여기는 경향이 자연스럽게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세상이야 어차피 그런 힘의 논리, 크기의 논리로 모든 것을 판단하고 평가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드러내야 할 사명을 가진 교회와 성도는 전혀 다른 논리와 가치관을 가지고 있어야 할텐데, 어느 순간에 세상의 논리에 잠식되어 가는 것을 보게 됩니다.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 고마운 투어였습니다. 5월 첫 주에 소박함과 평범함의 아름다움과 능력이 가득한 그 곳을 다시 한번 가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