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소식
“비우고, 나누고, 흘러가게 하라” — 전재성 목사
우여곡절 끝에 이사를 마쳤습니다. 2년동안 세들어 살았던 집에 렌트 기간이 끝나서 새로운 집으로 옮겨가게 되었습니다. 21년간 미국에서 살면서 제일 힘든 이사였던 것 같습니다. 유학생활과 이민목회 생활을 하면서 6-7차례 이사를 했었지만 언제나 이사는 고되고, 피곤한 일입니다. 할수만 있다면 초가삼간이라도 좋으니 이사하지 않고 한곳에서 쭉 머무를 수 있기를 소원해 봅니다. 그러나 목회자에겐 사치스러운 소망일는지 모르겠습니다. 신학교 시절, 실천신학 과목을 담당하셨던 목회현장에 계셨던 선배 목사님들이 해주셨던 충고가 새삼 떠오릅니다. “목회자는 늘 세가지 준비를 하고 살아야 합니다. 첫째, 언제 어디서든지 설교할 준비, 둘째,…
알론바굿—고현권 목사
지난 주일 저는 창세기 35장 1~8절을 본문으로 말씀을 전하였습니다. 그런데 제가 한 가지 다루지 못했던 것이 “알론바굿”입니다. 벧엘에서 야곱의 어머니 리브가의 유모였던 데보라가 죽자, 야곱이 상수리나무 아래에 묻고 그 땅 이름에 붙인 이름이 “알론바굿”입니다. “통곡(알론)의 상수리 나무(바굿)”이란 뜻입니다. 야곱이 데보라의 죽음 앞에 통곡하였기 때문에 이런 이름을 붙였던 것입니다. 데보라는 리브가의 유모라고 되어 있습니다. 아마도 리브가가 이삭에게 시집올 때 함께 따라왔던 몸종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니 자연히 리브가가 낳은 아들인 야곱을 돌보는 일을 담당하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일개 몸종이자 유모에 불과한 데보라의 죽음에…
거룩한 소원— 고현권 목사
제가 어릴 적에 읽었던 독일 동화 가운데 이런 이야기가 들어 있습니다. 어느 마을에 가난하지만, 마음씨 착한 부부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밤 이 집을 방문한 천사가 부부에게 세 가지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말했습니다. 때마침 배가 고팠던 아내가 자기도 모르게 무심코, “아! 노릇노릇 구운 소시지가 먹고 싶다!”라는 말을 내뱉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그들 앞에 잘 구워진 소시지 한 접시가 놓였습니다. 그것을 본 순간 남편이 너무나 화가 났습니다. “아니, 이 귀중한 기회를 하찮은 소시지로 날려버려?” 그래서 자기도 모르게 버럭 소리 질렀습니다. “소시지가 코에나 붙어버려라!” 그러자,…
미국 독립 250주년을 기념하며!— 고현권 목사
지금부터 50년 전인 1976년은 제가 초등학교 4학년이었습니다. 그때를 곰곰이 되돌아보니 두 가지 사실이 제 기억 속에 확연히 새겨져 있었습니다. 하나는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개최된 하계 올림픽입니다. 그때까지 한국은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레슬링 경기에서 양정모 선수가 한국 최초의 올림픽 금메달을 획득한 것입니다. 그때의 감동은 아직도 생생하게 제 가슴에 남아 있습니다. 또 하나는 그 해가 미국 독립 200주년이 되는 해라는 것입니다. 이를 기념하여 우리 정부가 기념우표를 제작하였고, 그것을 우체국에 가서 구매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로부터 50년이 지난 2026년 미국 독립…
월드컵 단상—고현권 목사
지난 6월 11일부터 미국, 캐나다, 멕시코 북중미 3개국이 개최하는 월드컵 축구 경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워낙 축구 보는 것을 좋아하는지라 아예 그 기간 축구 경기를 볼 수 있도록 Fox One 채널 두 달 치 시청권을 샀습니다. 몇몇 분들이 교회 친교실에서 한국 경기를 보았으면 좋겠다고 해서 장로님들과 상의 후 친교실을 오픈하고 함께 보았습니다. 결과는 아시는 것처럼 한국이 A조 3위가 되어서 곧바로 32강에 진출하지 못하고 경우의 수를 따지게 되었습니다. 특별히 조별 예선 마지막 경기는 객관적으로 너무 어이없는 경기력을 보이다가 약체로 평가받던 남아공에 지는 바람에…
“여러분의 시선은 어디를 향하고 있습니까?”— 이준혁 전도사
구약 시대의 레위인 아삽은 하나님께서 구별하신 찬양 사역자였습니다. 그런 그조차도 신앙인으로서 실족할 뻔한 위기가 있었습니다(시 73:2). 바로 ‘악인의 형통함’을 응시했기 때문입니다(시 73:3). 신약의 베드로 사도 역시 물 위를 잘 걷다가, 시선이 예수님이 아닌 ‘바람’을 향하자 곧바로 물속으로 가라앉기 시작했습니다(마 14:30). 성도 여러분, 지금 여러분의 시선은 어디에 있습니까? 찬양 <시선>의 가사처럼 모든 시선을 주님께 드리고 계시는지요? 혹시 한 눈으로는 주님을 바라보면서, 다른 한 눈으로는 세상 사람들의 것들을 부러워하며 두 주인을 섬기려 하지는 않습니까? 혹은 내 인생의 문제와 아픔만 너무 묵상하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