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론바굿—고현권 목사

알론바굿—고현권 목사

지난 주일 저는 창세기 35장 1~8절을 본문으로 말씀을 전하였습니다. 그런데 제가 한 가지 다루지 못했던 것이 “알론바굿”입니다. 벧엘에서 야곱의 어머니 리브가의 유모였던 데보라가 죽자, 야곱이 상수리나무 아래에 묻고 그 땅 이름에 붙인 이름이 “알론바굿”입니다. “통곡(알론)의 상수리 나무(바굿)”이란 뜻입니다. 야곱이 데보라의 죽음 앞에 통곡하였기 때문에 이런 이름을 붙였던 것입니다. 데보라는 리브가의 유모라고 되어 있습니다. 아마도 리브가가 이삭에게 시집올 때 함께 따라왔던 몸종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니 자연히 리브가가 낳은 아들인 야곱을 돌보는 일을 담당하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일개 몸종이자 유모에 불과한 데보라의 죽음에 대해 성경이 지면을 할애하여 기록하고, 야곱이 그녀의 죽음을 이토록 슬퍼하였을까요? 데보라는 야곱을 돌보며 따뜻하게 격려하는데 그녀의 일생을 보내었습니다. 야곱이 잘못된 길을 걷고, 그 결과 위기를 만나고 어려움에 처했을 때도 언제나 함께하면서 어머니처럼 품어주었습니다. 이것을 기억한 야곱은 데보라의 죽음에 대해 그토록 슬퍼하면서 그녀가 묻힌 곳을 “알론바굿”이라고 명명한 것입니다.

  지난 주간에 저에게는 야곱의 “알론바굿”과 유사한 슬픔이 있었습니다. 저에게 신학과 목회와 예수님의 제자로서의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던 김영재 교수님(1935-2026)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으셨기 때문입니다. 김영재 교수님은 저의 모교인 합동신학대학원의 교회사 교수님이셨습니다. 신학교에 입학하여 그분의 첫 강의를 듣는 그날로부터 저는 교수님의 교회사를 보는 안목과 성경과 목회와 신자의 삶에 대한 안목에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교회사에 매진하게 되었고 미국 유학을 와서 계속 교회사 공부를 하게 된 것입니다. 교수님은 언제나 균형을 강조하시고, 모두를 품는 따뜻한 목회의 본을 보이셨습니다. 아들뻘인 저에게 언제나 깍듯하게 대하시면서 늘 격려와 위로를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은퇴 후에 한국에서 강의와 저술 활동을 계속하시다가 장녀가 있는 애틀랜타로 오셔서 사셨습니다. 그러다가 2년 전 따님을 먼저 보내는 슬픔을 겪기도 하셨습니다. 따님 소천 후 다시 한국으로 나가셔서 지내시다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으신 것입니다. 별세 두 달 전에 전화했을 때 여전히 밝은 목소리로 저의 건강 회복을 위해 기도하신다고 하셨는데, 그것이 마지막 통화가 되고 말았습니다. 너무나 귀한 스승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주님 품에서 안식하실 것을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