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현권 목사
제가 지난 주일 컬럼에 이자익 목사님 이야기를 썼습니다. 정말 아름다운 한국 초대교회의 이야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이왕 한국 초대교회 이야기를 시작했으니 몇 가지 더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보고자 합니다.
서울을 방문하는 외국인들이 한번은 반드시 들러는 곳 중의 하나가 인사동입니다. 서울의 옛 정취가 어느 정도 보존되어 있고, 좁은 골목길로 한국의 전통 공예점이나 골동품 가게들이 운집해 있으며, 집을 개조해서 만든 맛집 식당들이 모여있는 곳이 인사동입니다. 인사동에 자리잡은 교회가 하나 있는데, 바로 “승동교회”입니다. 승동교회는 1893년 미국의 북장로교회 파송 선교사인 새무얼 무어 목사님(Rev. Samuel Moore)이 설립하였는데, 초창기에는 주로 양반들이 전도를 받아 교회를 이루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무어 목사님의 전도를 받고 한 사람이 교회에 들어오게 되었는데, 이 사람의 이름이 박성춘입니다. 문제는 박성춘의 출신성분인데, 당시 천민 중의 천민으로 취급 받던 백정 출신이었습니다. 양반들이 중심이 되어 모인 교회에 백정이 들어왔으니 얼마나 분위기가 싸늘했겠습니까? 그러나 무어 목사님의 목회적인 돌봄과 격려 가운데 믿음이 성장한 박성춘은 주님의 은혜에 감격하여 수많은 백정들과 천민들을 전도하여 교회로 인도하였습니다.
시간이 흘러 장로선거가 있었는데, 이게 웬일입니까? 백정출신인 박성춘이 덜컥 장로로 피택(被擇)된 것입니다. 그러자 양반 신자들을 중심으로 당장 반발이 일어났습니다. ‘어떻게 우리가 백정 출신의 장로의 지도를 받을 수 있겠는가?’ 결국 이들 양반출신 신자들이 중심이 되어 안국동(安國洞)에 교회가 설립되는데, 이 교회가 바로 안동(安洞)교회입니다. 경북 안동에 있는 안동(安東)교회와는 한자가 다릅니다. 서울 안동교회에는 명문가문들이 많았는데, 그 중의 하나가 윤보선 대통령 가문입니다.
제가 주목하는 것은 한국의 초대교회가 어쩌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보다 더 열린 사고를 하였다는 것입니다. 신분질서가 엄연한 현실이었던 당시의 상황에서 천민 출신이 교회의 장로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복음에 내포된 차별없는 하나님의 사랑 때문입니다. 한국에 방문하실 기회가 있으면 인사동에 들러 맛있는 음식들도 맛보시고, 승동교회도 방문하여 잠시 기도한 후에 아름다운 역사의 흔적을 느껴보시면 어떨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