얀 후스와 종교개혁의 여명

얀 후스와 종교개혁의 여명

 

 

고현권 목사

 

흔히들 종교개혁(Reformation)하면 독일의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 1483-1546)가 1517년 10월 31일에 독일 비텐베르그 성당 정문에 로마 가톨릭교회의 부패와 타락을 지적한 95개조를 게시하면서부터 시작된 것으로 봅니다. 그러나 종교개혁를 위한 거룩한 몸부림은 그보다 훨씬 앞선 시기부터 있어왔습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보헤미아(오늘날의 체코)의 종교개혁자인 얀 후스(Jan Hus, 1372-1415)입니다. 로마 가톨릭교회의 사제이자, 프라하 카렐대학교의 신학교수였던 후스는 당시 로마 가톨릭교회의 부패와 성직 매매, 그리고 면죄부 판매에 대해서 강하게 비판하였습니다. 후스는 오직 성경의 절대 권위를 주장하고, 성찬식 때에 주님의 피를 상징하는 포도주 잔을 평신도들도 마실 수 있다고 가르쳤습니다. 당시 로마 가톨릭교회는 성경뿐만 아니라 교황의 칙서나 교회회의 결정도 성경과 동등한 권위가 있다고 가르쳤는데 이를 정면으로 반박한 것입니다. 또한 로마 가톨릭교회는 성찬식 때에 사제가 “이는 주의 살이요 피로다!”라고 선언하는 즉시로 빵과 포도주가 실제로 주님의 살과 피로 바뀐다는 화체설(化體說, transubstantiation)을 가르쳤는데, 혹시라도 평신도가 마시다가 실수하여 포도주를 흘리면 주님의 보혈을 손상하는 결과를 가져오기에 집전하는 사제만이 마실 수 있도록 한 것인데, 이런 가르침이 비성경적이라고 비판하면서 평신도들도 참여하게 한 것입니다.

 

이런 얀 휴스를 로마 가톨릭 당국이 가만둘리 없었겠지요. 1414년 스위스 콘스탄츠에서 종교회의가 열렸을 때에 안전보장을 빌미로 얀 후스를 초청하였다가 그를 체포하여 구금하고 이단자로 파문한 뒤에 화형에 처한 것입니다. 화형을 당하면서 후스가 남긴 유언이 있습니다. “오늘 당신들은 볼품없는 거위를 불에 태우지만, 100년의 시간이 흐른 후에는 당신들이 영원히 태워 없앨 수 없는 백조의 노랫소리를 듣게 될 것이오!” 그의 유언대로 100년 후에 백조가 나타났으니 바로 마르틴 루터였습니다. 이 때문에 백조는 루터파의 상징 중 하나가 되었다고 합니다. 얀 후스의 숨결이 살아있는 체코의 수도 프라하가 보고 싶습니다. 사족 하나. 제가 좋아하는 축구 선수가 아스날팀의 골키퍼인 페트르 체흐인데, 그도 체코인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