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현권 목사
예수님의 숨결이 배여 있는 팔레스타인 땅에 많은 분들이 성지순례라는 이름으로 방문합니다. 김상묵 목사님이 담임하실 때에 저희 교회 성도들이 성지순례를 다녀온 적이 있다고 들었는데, 다시 한번 교회 차원에서 추진해보면 좋겠다는 의견이 제법 많습니다. 그런데 성지순례는 이미 초대교회 때부터 있었다고 합니다. 특별히 공로를 강조하는 로마 가톨릭교회의 신학적 입장 때문에 중세시대에는 성지순례가 매우 권장되는 편이었습니다.
634년에 예루살렘이 이슬람 세력의 지배 하에 들어가게 되지만, 성지순례를 위해 예루살렘을 방문하는 것은 허용되었습니다. 그런데 셀주크 투르크족이 소아시아와 팔레스타인 땅을 차지하면서부터 성지순례는 불가능해졌습니다. 여기에다 기독교 국가인 비잔틴 제국이 셀주크 투르크족에 의해 위협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에 1095년에 로마 교황 우르반 2세가 예루살렘 회복을 주창하였고, 이에 대한 호응으로 일어난 것이 이른바 십자군 전쟁입니다.
제 1차 십자군 전쟁을 통해 소아시아와 예루살렘을 탈환하고 그곳에 기독교 국가를 세우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예루살렘을 탈환한 십자군들은 거기에 거주하던 유대인들과 무슬림들을 잔혹하게 학살하는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이 일로 인해 이슬람 지역에 대한 복음의 문이 거의 닫히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었습니다. 이들은 오늘날까지 기독교를 힘으로 살육하고 착취하는 십자군(crusades)으로 생각하면서 강하게 거부하는 실정입니다.
오늘날 일부 교회와 기독교 단체들이 십자군 정신으로 복음을 전하려 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미안한 말이지만, 힘과 돈과 정치 권력을 가지고 행하는 모든 시도는 예수님이 보여주신 복음의 본질과 거리가 먼 왜곡된 기독교에 불과합니다. 온유와 겸손, 사랑과 섬김, 그리고 나약하지만 당당하게 하나님의 의를 드러내는 것이 진정 십자가의 도를 자랑하는 복음적 기독교입니다. 강압과 협박이 아닌 따뜻함과 겸손함으로 설복(說服)시키는 기독교여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추구할 것은 “십자군”(crusades)가 아닌 “십자가”(cross)여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