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현권 목사
2015년 12월말로 부목사로 섬기던 교회를 떠나게 되었습니다. 하루 아침에 어린 자녀 넷을 둔 실직자가 되었습니다. 당장 먹고 사는 문제가 현실로 다가왔습니다. 그때까지 목회 이외에는 해 본적이 없었기에 눈앞이 막막하였습니다. 하는 수 없이 ‘푸드 스템프’로 불렸던 빈곤층을 위한 식품 지원 프로그램을 신청하게 되었습니다. 그냥 신청한다고 나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제가 정말 실직 상태인지를 철저히 검증하는 절차를 거친 후에 비로소 “EBT”라는 이름의 카드를 발급받게 되었습니다.
한편으로는 감사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몹시 불편했습니다. 일종의 자존심 때문이었습니다. 특별히 한인마트에 가서 식품을 구입하고 계산대에 섰을 때에 EBT 카드를 내는 제 손이 떨렸습니다. 한인직원이 제 얼굴을 쳐다볼 때는 왜 그렇게 위축되던지요! 혹시라도 물건을 사러 왔던 예전 교회 성도들이 보면 어떻게 할까 싶은 마음도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 후로는 웬만한 것들은 미국 마켓에서 구입하고, 한인마트를 꼭 가야 할 일이 생기면 문닫기 직전에 가곤 했습니다. 저에게는 이른바 푸드 스템프가 ‘눈물 젖은 빵’이었습니다.
생계를 위해 제 아내와 함께 도시락 배달업체에서 일을 시작하게 되었고, 오후에는 웨어하우스와 식당에서 각각 일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본교회의 담임목사 청빙광고를 보고 지원을 했고, 감사하게도 부족한 저를 성도들이 담임목사로 청빙 해주셨습니다. 저희 교회로부터 청빙서를 받는 순간 제가 제일 먼저 한 일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LA County 공중 보건국에 번역된 청빙서를 첨부하여 그 동안의 베풀어준 것에 감사하면서 , 지원을 중단해줄 것을 요청하는 편지를 보내는 일이었습니다. 그 편지를 보내면서 마음 속에 얼마나 뿌듯함이 밀려왔는지 모릅니다!
최근에 이상한 소문을 들었습니다. 제가 여기 와서 푸드 스템프를 신청하려고 했다나요? 거짓말을 해도 정도껏 해야지요! 아마도 그런 거짓말을 지어낸 사람은 ‘눈물 젖은 빵’을 먹어본 경험이 없는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영혼이 불쌍하게 여겨질 뿐입니다. 저를 ‘푸드 스템프’에서 벗어나게 해주신 하나님과 본교회 성도님들께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한주간 휴가를 통해 쉼을 얻고 돌아와서 더욱 충성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