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현권 목사
지난 주일부터 저는 8월말부터 계속 해오던 마가복음 강해를 잠시 멈추고 성탄을 주제로 한 설교를 시작했습니다. 저는 이번에 마태복음 2장을 중심으로 네 번에 걸쳐 성탄 시리즈 설교를 할 예정입니다. 지난 주일에 동방 박사에 대해서 설명을 드렸는데, 어떤 분이 저에게 동방박사가 “바벨론의 천문학자”라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고 말했습니다. 본문을 묵상하다가 이런 질문이 일어났습니다. ‘왜 하나님은 유대인들을 놔두고 동방박사들을 사용하셨을까?’ 이런 질문을 저 자신에게 던지면서 참 유익을 얻었기에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동방박사들이 아기 예수님을 경배하기 위해 찾아간 장면을 그린 성화(聖畵)들을 보면, 참 흥미로운 점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마구간이었다는 사실입니다. 대부분의 화가들은 극적인 장면을 담아내기 위해 출생 직후에 여전히 마구간에 있던 아기 예수님을 찾아간 것으로 그렸던 것 같습니다. 동방박사들은 바벨론에서 가져온 세가지 예물,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아기 예수님께 드렸습니다. 그런데 조금 객관적인 시각에서 보면, 동방박사들의 행동은 납득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왜일까요? 그것은 그들이 찾아온 아기 예수님의 정체 때문입니다. 그들은 바벨론 땅에서 한 이상한 별을 보고서 유대인의 왕이 나셨다는 것을 직감했습니다. 그리고 직접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를 찾아 뵙고 경배하기 위해 머나먼 유대 땅까지 온 것입니다. 마침내 별의 인도를 따라 들어간 곳이 마구간이었고, 아기 예수님은 구유에 뉘여 있었습니다. 아니, 어떻게 존귀한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이런 곳에서 태어날 수 있는 것입니까?
만일 유대의 율법학자들이었다면 당장 그곳을 뛰쳐나왔을 것입니다. 영광과 능력의 메시아는 이런 누추한 곳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동방박사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기쁨으로 경배하면서 아기 예수님께 세가지 예물을 드렸습니다. 그들이 주목한 것은 눈 앞에 나타난 환경이 아니라, 아기 예수님을 가리키는 별이었습니다. 별이 가리키는 그 분이 중요한 것이지, 그 분이 난 환경은 그들의 고려대상이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런 묵상을 하면서 제 자신에게 또 하나의 질문을 던졌습니다. “과연 나는 마구간에 나신 예수님을 인정하고 경배할 수 있을까?” 여러분은 어떻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