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강(松江) 정철(鄭澈, 1536-1593)은 조선 선조대의 정치가이자 관동별곡(關東別曲), 사미인곡(思美人曲)을 지은 명문장가입니다. 사미인곡은 임금에 대한 사모와 충정을 생이별한 남편을 그리워하는 여인의 심정을 빗대어 쓴 조선시대 문학의 백미라고 평가받기도 합니다. 그러나 저에게 송강 정철 선생은 이런 위대한 문학작품보다 아주 짧지만 가슴을 울리는 시조 한편으로 더 다가옵니다. 여러분도 잘 아시는 “어버이 살으신제”로 시작하는 시조입니다.
어버이 살아신 제 섬길 일란 다하여라.
지나간 후면 애닯다 어찌 하리.
평생에 고쳐 못할 일이 이뿐인가 하노라.
어릴때에는 선생님이 암송하라고 하셔서 그저 숙제하는 심정으로 외우곤 했는데, 요즘 이 시조 글귀가 그렇게 제 마음 속을 파고 들어올 수 없습니다. 양친께서 모두 세상을 떠난지 한참이 지난 요즘, 왜 그 분들이 살아계실 때에 좀 더 잘 해드리지 못했을까 하는 회한이 자주 밀려들곤 합니다. “너도 자식낳아보면, 내 마음을 알거야”라고 하시던 어머니의 그 말씀이 요즘 더 제 가슴을 파고 듭니다. 빨리 유학생활 마치고 돌아가서 제대로 아들 노릇하고자 했지만, 이러저러한 사정으로 결국 미국에 남아서 목회를 하게 되었고, 그 사이에 어머니는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그래서 더 애닯습니다.
최근에 한국에서 심장 대동맥 혈관 파열로 대수술을 받고 회복 중이신 장인어른에 대한 제 아내의 마음도 그러함을 느끼곤 합니다. 두 딸들이 모두 미국에서 가정을 꾸리고 사는 바람에, 딸 노릇 제대로 할 수 없음에 한없이 서러워하는 아내를 보면서 미안한 마음이 이만저만 아닙니다. 너무나도 강인한 삶을 사셨던 장인어른의 나약한 모습을 처음 보는 저의 마음도 아프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언제일지 모르고, 가능할지도 모르지만, 제대로 딸 노릇, 사위 노릇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게 다가옵니다. 요즘 룻기를 강해하고 있는데, 룻의 아름다운 마음이 더 절절히 느껴지는 하루입니다. 모든 어머님들! 모두 다 건강하시길 기도합니다.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