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한해는 저와 여러분의 인생역사에서 결코 잊을 수 없는 한 페이지가 될 것입니다. 너무나 생소했던 영어단어 “팬데믹”(pandemic)이 너무나 친숙한 말이 되었습니다. 여전히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어떤 글로 2020년 마지막 주보 컬럼을 마무리할까 생각하는 중에 제 마음에 “소망”이라는 두 글자가 강하게 밀려 올라왔습니다. 그러면서 어느 책에서 읽었던 이야기 한토막이 생각났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거의 600만 명의 유대인들이 나치독일의 수용소에서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던 가장 큰 사인은 바로 절망이었습니다. 수용소에 수감되어 있는 동안 다수의 유대인들은 살 소망을 잃어버렸습니다. 그 결과 나오는 것이 막 사는 것이었습니다. 똥오줌을 아무데나 싸고, 세수하는 것을 포기하고 지저분하게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 한 의사 출신 유대인이 있었습니다. 그는 언젠가 여호와 하나님이 반드시 그들에게 해방의 날을 주실 것을 확신하였습니다. 수용소 생활이 점점 길어질수록, 해방의 날은 점점 더 다가온다는 믿음을 가진 것입니다. 해방의 날에 짐승 같은 몰골을 보이고 싶지 않았습니다. 이런 소망 때문에, 그는 막 살 수 없었습니다. 어느 날 땅바닥에서 유리조각을 하나 주웠습니다. 이 사람은 이것을 가지고 면도를 하고, 물을 아끼고 아껴 세수를 하였습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유리조각으로 어떻게 제대로 된 면도를 할 수 있겠으며, 손바닥만한 물로 어떻게 제대로 된 세수를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독일군의 눈에는 그 사람만이 사람으로만 보였습니다.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이 가스실로 보내어져 죽임당하는 가운데서도 살아남을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소망을 가지고 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잘 보여주는 이야기입니다.
제가 늘 가슴에 새기는 성경구절 중의 하나가 요한일서 3:3절입니다.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 진정 소망이 있고, 꿈이 있는 사람은 막 살지 않습니다. 그런 소망이 넘칠수록 그 소망에 합당하게 살려고 몸부림치는 것입니다. 소망을 품고 2021년을 새롭게 시작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