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다라는 이름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이상하리만치 불편하게 다가옵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을 은 삼십에 팔아버린 가룟 유다때문입니다. 그런 이유에서인지 아이의 이름을 “쥬드”(Jude)로 짓는 사람은 별로 보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원래의 뜻은 “찬송”이라는 뜻을 가진 좋은 이름입니다. 저에게 아주 좋은 이미지를 준 유다 혹은 쥬드라는 이름은 세 경우입니다. 첫째는 비틀즈의 “헤이 쥬드”(Hey Jude)라는 노래입니다. 이 노래는 부모의 이혼으로 고통을 당하는 존 레논의 아들 줄리안을 위로하기 위해 폴 매카터니가 만든 노래입니다. 참 마음을 따뜻하게 감싸는 노래입니다. 둘째는, 캘리포니아에 있는 세인트 쥬드 병원입니다. 남가주에서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병원으로 명성이 자자합니다. 세번째는, 오늘 칼럼의 주인공인 야고보의 형제 유다입니다.
요즘 주일마다 야고보서 강해를 하고 있는데, 야고보가 누구입니까? 예수님의 육신의 동생이 아닙니까? 그렇다면 그 야고보의 동생이라면 당연히 예수님의 육신의 동생이기도 하지요. 그런데 유다는 자신을 어떻게 소개합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요 야고보의 형제 유다”(유1:1)라고 소개합니다. 야고보와 마찬가지로 유다 역시 처음에는 예수님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비로소 그가 근본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그후로부터 육신의 형님이 아닌 자신의 주님으로 정확하게 고백하게 된 것입니다.
야고보와 유다는 예수님의 육신의 동생이었기에, 당연히 초대교회에서 주목과 존경의 대상이 되었을 것입니다. 만일 이들이 형님 대신 교회를 다스리겠다 주장한다고 해도 분위기상 이의제기를 할 사람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야고보와 마찬가지로 유다도 자신을 철저히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소개합니다. 비록 사적으로는 어머니 마리아의 배를 통해 태어난 동복 형제이지만, 공적으로는 자신의 구원자요, 주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 자신들을 예수님의 종이라고 낮추는 야고보와 유다에 대해 초대교회 성도들의 태도은 그들을 “주의 형제”로 깍듯하게 대합니다. 자신의 존재를 과시하지 않고 철저히 내려놓는 예수님의 형제들과 그들에 대해 합당한 예를 갖추는 초대교회의 아름다운 균형이 초대교회를 초대교회답게 만든 것입이다. 누가 아이 이름을 하나 추천해달라고 한다면, 과감하게 “쥬드”를 권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