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은 기쁨의 반대를 슬픔이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예수 믿는 사람들은 슬퍼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합니다. 왜냐하면, “항상 기뻐하라”고 말씀했기 때문입니다. 과연 이것이 옳은 생각일까요? 사랑하는 오빠 나사로를 잃고 통곡하는 마리아와 마르다를 본 예수님의 반응이 무엇입니까? 요한복음11:35절입니다. “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시더라.” 예수님은 마리아와 마르다의 슬픔에 같이 동참하셔서 눈물을 흘리신 것입니다. 로마서12:15절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즐거워하는 자들로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로 함께 울라” 성경 그 어디에도 신자는 결코 슬퍼해서는 안된다고 말씀하지 않습니다.
그렇면 성경이 말하는 기쁨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한가지 특징이 있는데, 기쁨은 언제나 하나님의 영광과 성도를 향한 하나님의 약속과 관련된다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5:41절을 보겠습니다.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라” 이 말씀은 사도들이 복음을 증거하다가 체포되어 유대의 최고 기관인 산헤드린 공회에 끌려가서 채찍질을 당하는 것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채찍질을 당한 사도들이 어떤 반응을 보입니까? 자신들이 당한 고난에 대해 도리어 기뻐합니다. 왜 기뻐하였지요? 자신들이 “그 이름”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능욕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김을 받았다는 사실때문에 기뻐한 것입니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기쁨입니다.
여러분은 이런 의미의 기쁨으로 항상 충만하십니까? 우리가 이런 기쁨을 누리지 못하는 이유는 오직 하나입니다. 우리의 삶의 포커스가 예수 그리스도 중심에 맞춰져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기쁨을 언제나 자기 중심에서 출발하기때문에 이런 기쁨을 맛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기쁨의 헬라어 단어는 “카라”입니다. 그런데 이 말은 “카리스”에서 유래했는데, “은혜”를 뜻합니다. 이것은 참된 기쁨이 참된 은혜의 산물이라는 보여줍니다. 무엇이 참된 은혜입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독생자를 대신 죽게 하신 것이 참된 은혜입니다. 그런 은혜를 받은 자는 어떻게 살아야 될까요?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해 죽는 주님 중심의 삶이어야 합니다. 다른 말로 하면 주님의 영광을 추구하는 삶입니다. 그럴때에 나오는 것이 바로 기쁨이라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