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만 들어도 마음이 따뜻해지는 단어들이 몇 있습니다. 그 중에 하나는 “관용”입니다. 헬라어로 관용이라는 말의 원래 뜻은 “오래 참음”입니다. 상대방의 연약함에 대해서 오래 참아주는 것이 관용입니다. 상대방의 부족함과 허물에 대해서 덮어주는 것이 관용입니다. 그리고 상대방이 그 부족함을 극복할 때까지 참고 기다려주는 것이 관용입니다. 제가 LA코리아 타운에서 목회할때 일입니다. 시계가 울려서 보니, 새벽 4:30분이었습니다. “이제 일어나야지!”하고서는 그만 깜빡 잠이 들어버렸습니다. 그러다가 눈을 떠보니, 새벽 5:30분, 새벽기도회가 시작되는 시간이었습니다. 가슴이 철렁거리고, 눈앞이 캄캄했습니다. 황망한 가운데 매일 새벽기도 나오시는 장로님께 전화 드렸습니다. 장로님이 웃으면서 저를 안심시키셨습니다. “목사님, 지금 부 목사님이 인도하시니까 염려하지 마세요.”
그날 오후에 늘 새벽기도회에 참석하시는 권사님 한 분이 교회 사무실로 전화를 하셨습니다. 권사님이 사무간사님께 오늘 담임 목사님이 새벽기도회를 인도하지 않으셨는데, 뭔 일이 있으셨는지 걱정이 되어서 이렇게 전화했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무간사님이 시치미를 뚝 떼시고, “오늘은 부목사님이 인도하는 순서”라고 둘러댔습니다. 그러자 권사님이 “아니라는 거 다 압니다.”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펼치시는 권사님의 추리가 걸작이었습니다. 보통 때는 찬송을 한 곡 부르고 말씀전하시는데, 오늘 새벽에는 부목사님이 찬송가를 연속으로 두 곡 불렀고, 자꾸만 고개를 빼들고 밖을 쳐다보더란 것입니다. 며칠 후 권사님을 만나 뵈었습니다. 권사님은 제 손을 꼭 잡으시더니, “목사님, 힘내세요! 사랑합니다!” 하시는 것입니다. 부족한 목사의 허물을 덮어주시고, 참아주시고, 도리어 격려하시는 그 관용의 마음이 얼마나 제게 큰 힘이 되었는지 모릅니다.
관용의 원어적 의미는 “오래 참음”이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기억하십니까? 고전13장에 나오는 사랑의 첫 번째 정의가 무엇입니까? “사랑은 오래 참고” 오래 참는다는 말의 영어표현이 눈길을 끌어당깁니다. 바로 “long suffering”입니다. 진정한 사랑은 그만큼 긴 고통을 동반하기 때문입니다. 마치 한 생명이 태어나기 위해서 산모가 열달 동안 고생을 하고 마지막에는 죽음과도 같은 산통을 통과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불현듯 몇해 전에 천국에 입성하신 그 권사님이 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