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씨시의 성자 프란치스코는 우리가 잘 아는 “평화의 기도”를 지은 중세시대 수도자입니다. 역사상 가장 부패했던 중세 로마 가톨릭교회의 흑암 속에서 한줄기 빛을 발한 촛불 같은 존재였습니다. 그는 원래 부유한 상인의 아들로 태어나 막대한 재산을 상속받았지만, 주님의 은혜를 뜨겁게 체험한 이후 그 모든 재산을 가난한 자들의 구제를 위해 기부하고 수도자가 되어 일평생 청빈한 삶을 추구하였던 인물입니다.
전해지는 바에 의하면, 성 프란치스코는 라 베르나 산에서 이른바 오상(五傷)체험을 했다고 합니다. 오상(五傷)은 말 그대로 다섯 가지 상처를 뜻합니다. 그는 예수님처럼 두 손과 두 발, 그리고 옆구리에 상처가 나고 실제 피가 나는 경험을 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수난의 고통을 느끼게 하여 달라고 간구할때에 하늘로부터 천사가 내려와서 날개로 그를 감싸안았는데, 그로부터 프란치스코의 몸에는 그리스도의 고난의 흔적이 나타났다고 합니다. 로마 가톨릭교회는 이런 성흔(聖痕, holy stigma)의 성경적 근거를 갈라디아서 6:17절에서 찾습니다.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가졌노라”
바울은 자신의 몸에 예수의 흔적을 가졌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가 말한 “예수의 흔적”은 이른바 프란치스코가 경험했다고 말하는 오상(五傷)과는 거리가 멉니다. 일차적으로 예수의 흔적이라는 말은 예수님을 위해 살다가 겪은 수많은 박해와 고초들을 의미합니다. 바울만큼 주님을 위해 충성을 다하였고, 그로 인해 말로 다할 수 없는 고난과 핍박을 당한 인물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이것을 자신의 위대함을 드러내는 도구로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것을 감추고 주님의 영광만을 드러내는 삶을 살았습니다. 이차적으로 예수의 흔적이라는 말은 예수님의 종이라는 자신의 정체성의 고백을 담고 있습니다. “흔적”이란 말은 원래 노예의 몸에 찍는 낙인(烙印)을 뜻합니다. 노예의 몸에 찍힌 낙인은 그가 어떤 사람의 소유요 종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를 빌려와서 바울은 자신의 몸에 예수의 흔적을 가졌다고 말합니다. 이 말은 “나는 예수님의 소유이고 그 분의 종입니다.” 여러분은 바울이 말한 의미의 “예수의 흔적”을 자신의 몸에 가지고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