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이 한 마을에 들어가셨다가 나병환자 열명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 앞에 나가지 못하고 멀리 서서 자신들을 불쌍히 여겨 달라고 간청하였습니다. 이들이 예수님께 가까이 나오지 못하고 멀찍이 서서 말한 이유는 레위기 13장에 나오는 정결규례때문입니다. 정결규례에 따르면 나병에 걸린 사람은 부정한 자로 취급되었기에 다른 사람들과의 접촉이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이들의 간청을 들은 예수님이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가다가 모든 나병환자들이 다같이 고침을 받았습니다. 얼마나 기뻤을까? 이제는 사람들로부터 멸시와 손가락질을 당하지 않아도 됩니다. 이제는 집으로 돌아가서 가족들과 함께 살 수 있게 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들의 반응이었습니다. 고침받은 열명의 나병환자 중에 단지 한 사람만 돌아와 예수님의 발아래 엎드려 감사하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것입니다. 놀라운 것은 그가 유대인들에게 천대받던 사마리아인이었습니다. 이것을 보신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 왜 고침 받은 아홉 사람은 돌아와서 감사를 드리지 않았을까요? 저는 감사라는 말을 통해 그 이유를 역추적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감사의 헬라어 의미는 “은혜에 대해 결코 잊지 않음”입니다. 다시 말하면, “받은 은혜에 대해 꼭 기억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기억하면 반드시 감사하게 되어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감사를 표하고 싶어도, 형편이 안되어서 못해요.”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우리가 드리는 물질이 아니라, 감사의 마음입니다. 하나님이 중요하게 여기시는 것은 받은 은혜에 대한 감사의 마음입니다. 아무리 크고 좋은 것을 드려도 감사가 없으면 그것은 열납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시편50편에는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한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나병의 특징은 신경이 죽어서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고 합니다. 아홉명의 나병환자들은 몸의 신경은 회복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영혼의 신경은 여전히 죽어 있었기 때문에 감사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것만큼 큰 불행도 없습니다. 지금 여러분의 영혼은 어떻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