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族譜, genealogy)하면 생각나는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제가 학부에서 역사를 전공했는데, 어느 수업 시간에 족보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그때 한 여학생이 말했습니다. “교수님, 저희 집안은 대대로 성당동에서 산 뼈대 있는 집안입니다.” 성당동은 대구의 부촌 중의 하나였습니다. 그런데 교수님이 심각한 얼굴로 말씀하셨습니다. “만일 대대로 거기서 살았다면 조금 심각한데? 왜냐하면 성당동은 옛날에는 백정들만 살던 천민촌이었거든.” 충격을 받던 그 여학생의 얼굴이 갑자기 떠오릅니다.
우리 한국 사람만큼 족보에 대해 민감한 민족은 바로 유대인들입니다. 마태복음은 유대인들을 위해 쓰여진 복음서입니다. 그러기에 마태는 예수님의 족보로 시작한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족보를 처음 접한 유대인들은 아마도 굉장히 당황하였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족보에 여인들이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그 당시 유대인들은 여인들을 사람의 수에 넣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오병이어(五餠二魚) 사건을 경험한 사람들의 수를 표기하는 데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먹은 사람은 여자와 아이 외에 오천 명이나 되었더라.” 또한 그 당시 법정에서는 여인들의 증언을 증거로 채택치 않았습니다. 이처럼 여인의 존재가 무시되던 시대에 유대인들을 위한 복음서를 쓰면서 여인을 예수님의 족보에 올린 것입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예수님의 족보에 오른 여인들의 면면입니다. “시아버지와 관계한 다말, 기생 라합, 이방여인 룻, 다윗과 동침한 우리아의 아내” 등등 경악할 인물들이 예수님의 조상 반열에 올라 있는 것입니다.
마태가 예수님의 족보를 이렇게 기록한 것에는 특별한 의도가 들어 있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자신만이 선택 받은 민족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구원도 오직 혈통적 유대인들만 받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어떤 구원자이십니까? 예수님은 만민의 구원을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 죽음을 통해 구원을 모든 사람들에게 차별없이 주셨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구원은 유대인과 이방인에게 차별이 없으며, 남자와 여자 사이에 차별이 없고, 종이나 자유자나 차별이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잘못된 편견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을 깨뜨리지 않고서는 예수님을 만날 수 없었기에 마태는 이상한 예수님의 족보를 기록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