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현권 목사
수년 전에 한국의 장신대학교 교회사 교수를 역임하신 김인수 박사님이 『예수의 양, 주기철』 이라는 책을 내셨습니다. 책 제목을 왜 이렇게 정했느냐 하면, 주기철 목사님의 아호인 “소양”( 蘇羊)때문입니다. 우리나라에 처음 복음이 전해졌을 때에, 예수를 한자음을 그대로 빌려 “야소”(耶蘇)라고 발음했습니다. 그 예수를 믿는 종교이기에 기독교는 야소교(耶蘇敎)로 불렸습니다. 이제 대충 감이 잡히셨을 것입니다. “소양”은 바로 “예수의 양”이라는 뜻입니다. 얼핏 보면, 신사참배를 단호히 거부하고 순교의 길을 택했던 주 목사님의 강인한 이미지와는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소양”이란 아호를 곰곰이 생각하다가 왜 주목사님에게 그런 아호가 붙여졌는가를 짐작하게 되었습니다.성경이 보여주는 양의 이미지는 목자의 보호 없이는 도무지 살 수 없는 존재입니다. 동시에 한 순간 방심하고 목자의 음성을 놓치면, 길을 잃고 죽음의 골짜기를 헤맬 수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아마도 양의 이미지를 가슴에 새기면서 주목사님은 날마다 자신을 “예수의 양”이라고 고백하지 않았겠나 생각해봅니다. “주여, 목자 되신 주님의 돌보심과 위로부터 부어 주시는 은혜 없이는 믿음대로 살 수 없는 연약한 존재입니다. 주여, 나를 도와주소서!”
매 순간 자신이 ‘소양’(蘇羊) 즉 ‘예수의 어린 양’임을 기억하면서, 오직 선한 목자 되신 주님의 도우심을 의지하고, 오직 자신의 눈과 귀를 예수님께 집중하였기에, 믿음의 선한 싸움을 다 싸우고,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킨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주 목사님은 결코 강인한 정신력의 소유자는 아니었습니다. 죽음의 공포를 두려워했던 연약한 인생이었고, 장기간의 고난 앞에 무너질 수 밖에 없는 자신임을 고백하며, 자신이 죽으면 남겨질 노모와 처자에 대해 걱정하던 지극히 평범한 인물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이 모든 것을 극복하고 마침내 순교하였던 것은 매 순간 자신을 ‘소양’ 곧 ‘예수의 양’으로 인정하는 그 고백 때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저와 여러분도 예수님의 어린양 곧 “소양”( 蘇羊)임을 기억하는 고난주간이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