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우리는 잃었던 “빛을 되찾은” 광복(光復) 75주년을 맞이합니다. 1945년 8월 15일, 일본 천황 히로히토의 항복 발표를 기점으로 그토록 그리던 조국 해방을 맞이하게 된 것입니다. 교회사적으로는 1945년 8월 17일이 기억될만한 날인데, 바로 이날 평양을 비롯한 전국 각지의 형무소에 수감되어 있던 개신교인 27명이 석방되었습니다. 이들을 일명 “출옥성도”라고 부르는데, 이들은 일제의 신사참배에 저항하다가 옥고를 치르게 된 것입니다. 놀라운 것은 일제가 원래 8월 18일에 이들을 전부 총살시키기로 계획을 세웠다고 하는데, 3일전에 해방이 되고, 하루 전에 출옥하게 된 것입니다. 다만 출옥성도에 포함되지 못한 분이 계시는데, 주기철 목사님이십니다. 주목사님은 1944년 4월 21일에 평양 형무소에서 수감중 고문으로 인한 건강악화로 순교하셨습니다.
이들 출옥성도들은 해방된 조국교회의 회복에 있어서 가장 우선해야 할 것은 신사참배한 죄에 대한 인정과 철저한 회개라고 주장했습니다. 구체적인 방안으로는 신사참배한 목사와 장로들은 2개월간 그 직분과 사역을 내려놓고 철저히 회개하는 모습을 보인 후에 다시 복직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에 대해 반발한 대표적인 인물이 홍택기 목사였습니다. 그는 1938년 9월 평양 서문밖 교회에서 모인 제27회 조선 예수교 장로교 총회의 총회장으로서 신사참배 가결을 주도했던 인물이었습니다. 그의 논리가 가관이었습니다. “신사참배를 반대하다가 투옥된 자나 교회를 지키기위해 하는 수 없이 신사참배를 한 사람이나 고난을 당한 것은 매 한가지인데, 왜 회개를 해야 한단 말인가?” 이 말에 용기(?)를 얻은 다수의 신사참배자들이 출옥성도들의 회개 요청을 거부해버렸습니다. 그리고 출옥성도들을 총회에서 축출하는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이것이 한국교회의 너무나 부끄러운 역사의 한 부분입니다.
역사에 있어서 “만일”(if)이라는 가정은 없다고 하지만, 만일 그 때에 신사참배를 주도한 자들이 하나님 앞에서 가슴을 치고 회개하면서, 신사참배 반대 투쟁을 하다가 옥고를 치르면서 고난당한 분들의 손을 잡고 용서를 구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한국교회의 역사가 달라졌을 것입니다. 회개와 용서, 그리고 화해와 회복의 정신이 한국사회 전반에 선한 영향력을 미쳤을 것입니다. 오늘날 한국사회의 분열과 극한 대립을 보면서 더욱 가슴을 치는 하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