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소식 (Page 29)

교회소식 (Page 29)

“큰 글자를 쓴 이유” : 고현권 목사

최근에 한국 야당의 30대 신임 당대표의 글씨가 화제를 모은 적이 있습니다. 그의 필체는 그렇게 반듯하지 못하게 보였습니다. 이에 대해 어떤 분이 중국 당나라 때에 나온 “신언서판”(身言書判)이라는 문구를 들이대면서 은근히 비판했습니다. 인재를 판별하는 방법으로 그 사람의 신체와 말, 그리고 글씨와 판별 능력을 본다는 뜻입니다. 그런데요즘은 거의 컴퓨터나 휴대폰 자판을 통해서 글을 쓰고 의사를 전하기에 펜을 들고 종이에 글씨를 쓰는 것이 당연히 어색한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러기에 1500년전의 기준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것은 대단히 잘못된 일입니다. 바울 당시에 대서자(代書者)라는 직업이 있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주로…

“장자의 명분” : 고현권 목사

어느 날 에서가 들에 사냥을 갔다가 돌아왔는데, 배가 고파 죽을 지경이었습니다. 바로 그때 야곱이 죽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이것을 본 에서가 야곱에게 간청했습니다. “내가 곤비하니 그 붉은 것을 나로 먹게 하라.”(창세기25:30) 이 장면을 보면서 우리가 자연스럽게 떠올리는 것은 “팥죽”입니다. 그런데 여기 사용된 히브리어 단어를 정확하게 번역하면, “팥죽”(red bean stew)이 아니라, “렌틸콩죽”(lentil stew)입니다. 자신에게 먹을 것을 달라는 에서에게 야곱이 내민 조건이 무엇입니까? 야곱은 형의 장자의 명분을 자신에게 넘겨달라고 요구합니다. 장자의 명분이란 무엇일까요? 그것은 맏아들로서 가지는 권리입니다. 히브리서12:16절에서는 이것의 의미를 더 구체적으로 드러닙니다.…

“자족(自足)과 참된 능력” : 고현권 목사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립보서 4:13) 이 구절은 이른바 “적극적 사고방식” (positive thinking)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근거구절로 유명합니다. 적극적 사고방식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우리가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우리의 소원에 대해 항상 꿈을 꾸며, 그것을 간절히 마음에 그리면, 반드시 이루어진다고 주장합니다. 어떤 이들은 이것을 “바라봄의 법칙”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저는 여기서 적극적 사고방식의 옳고 그름에 대해서 시비를 가릴 생각이 없습니다. 다만 과연 빌립보서 4:13절이 적극적 사고방식의 주장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우리가 무엇이든지 꿈을 꾸고, 마음에 그리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관용에 대하여” : 고현권 목사

말만 들어도 마음이 따뜻해지는 단어들이 몇 있습니다. 그 중에 하나는 “관용”입니다. 헬라어로 관용이라는 말의 원래 뜻은 “오래 참음”입니다. 상대방의 연약함에 대해서 오래 참아주는 것이 관용입니다.  상대방의 부족함과 허물에 대해서 덮어주는 것이 관용입니다. 그리고 상대방이 그 부족함을 극복할   때까지 참고 기다려주는 것이 관용입니다. 제가 LA코리아 타운에서 목회할때 일입니다. 시계가 울려서 보니, 새벽 4:30분이었습니다. “이제 일어나야지!”하고서는 그만 깜빡 잠이 들어버렸습니다. 그러다가 눈을 떠보니, 새벽 5:30분, 새벽기도회가 시작되는 시간이었습니다. 가슴이 철렁거리고, 눈앞이 캄캄했습니다. 황망한 가운데 매일 새벽기도 나오시는 장로님께 전화 드렸습니다. 장로님이 웃으면서…

“기도와 감사, 예언적 완료로 하십시오!”: 고현권 목사

구약성경의 인물 중에서 제가 가장 공감하는 사람은 선지자 요나입니다. 그래서 몇해 전에 수요예배때에 요나서를 강해하기도 했습니다. 하나님께 불순종하다가 바다에 던져진 요나는 결국 큰 물고기 뱃속에 들어갑니다. 거기서 요나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산의 뿌리까지 내려갔사오며 땅이 그 빗장으로 나를 오래도록 막았사오나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내 생명을 구덩이에서 건지셨나이다”(요나서 2:6) 그가 이렇게 말한 시점은 여전히 물고기 뱃속에 들어 있을 때입니다. 기도의 관점으로 보면, 아직 자신의 기도가 응답을 받지 못한 시점입니다.  그런데 그가 뭐라고 고백합니까? “내 생명을 구덩이에서 건지셨나이다!” 요나는 마치 자신의…

“가장 귀한 것” : 고현권 목사

바울은 한때 자신의 히브리 혈통과 할례, 그리고 율법의 의와 같은 것을 육체의 자랑거리로 여겼습니다. 그러다가 다메섹 가는 길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면서 이 모든 것이 완전히 깨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자기가 그토록 자랑했던 것들이 실은 보배가 아니라 배설물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 순간 얼마나 부끄러웠을까요? 자신이 벌거벗은 몸인줄 모르고 가장 멋진 옷을 걸쳤다고 착각했으니 말입니다. 향기나는 향수인줄 알고 온 몸에 바르고 다녔는데, 알고 보니 배설물이었던 것입니다. 바로 그 순간 바울은 모든 율법의 의와 수많은 자랑을 버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제시된 하나님의 의를 붙잡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