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s from 2021 (Page 4)
“의복을 바꾸십시오”: 고현권 목사
야곱이 세겜이라는 곳에 머물고 있었을때에, 외동딸 디나가 세겜 땅의 추장의 아들에 의해 못쓸 짓을 당하게 됩니다. 이에 분노한 야곱의 아들들이 여동생을 겁간한 추장의 아들뿐만 아니라 성의 모든 남자들을 죽이고 재물을 약탈하는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이 일을 들은 야곱이 두려움에 사로잡힙니다. 이 소식을 들은 주변의 가나안 족속들이 자신을 결코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때 하나님이 야곱을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벧엘로 올라가서 환난날에 도우셨던 하나님께 단을 쌓으라고 명하셨습니다. 이에 용기를 얻은 야곱이 가족들을 데리고 벧엘로 올라갔습니다. 그런데 올라가기 전에 그가 가족들에게 세…
“사랑이 없으면”: 고현권 목사
어떤 성도님이 저에게 얼마 전에 들려준 이야기입니다. 최근에 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있었는데, 건너편 테이블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렸습니다. 고개를 들어 보니한 분이 방언으로 식사기도를 하고 있었고, 함께 있던 분들이 아멘으로 화답하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조금 지나치지 않았나 하면서 저에게 의견을 구하였습니다. 바울은 방언의 은사를 그렇게 공개적으로 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분명히 지적합니다. 지면 관계상 일일이 설명할 수 없기에 고린도전서 14장을 읽어볼 것을 권합니다. 방언은 기독교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종교학자들에 따르면, 각 종교마다 신비한 언어적 체험으로서의 방언과 유사한 현상이 존재합니다. 얼마 전에 읽은 자료에서…
“초막절에 담긴 영적 의미”: 고현권 목사
초막절은 유대달력으로 7월 15일부터 한주간 동안 광야로 나가서 초막을 만들고 거기에 거하는 절기입니다. 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초막절을 지키라고 하셨을까요? 풀과 나뭇가지를 엮어 만든 초막은 사막기후에서는 얼마가지 않아서 말라버리게 됩니다. 초막에서 한주간 기거하면서 이것을 볼때마다 무엇을 떠올리게 될까요? 이 땅에서의 부귀와 즐거움은 일시적이요 한순간이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의 길이도 한뼘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육신의 장막은 결국 썩어 없어질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유대인들이 풀과 나뭇가지로 만든 초막에서 주로 읽는 성경책이 전도서라고 합니다. 전도서 1:2절 말씀입니다. “전도자가 가로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예수의 흔적”: 고현권 목사
아씨시의 성자 프란치스코는 우리가 잘 아는 “평화의 기도”를 지은 중세시대 수도자입니다. 역사상 가장 부패했던 중세 로마 가톨릭교회의 흑암 속에서 한줄기 빛을 발한 촛불 같은 존재였습니다. 그는 원래 부유한 상인의 아들로 태어나 막대한 재산을 상속받았지만, 주님의 은혜를 뜨겁게 체험한 이후 그 모든 재산을 가난한 자들의 구제를 위해 기부하고 수도자가 되어 일평생 청빈한 삶을 추구하였던 인물입니다. 전해지는 바에 의하면, 성 프란치스코는 라 베르나 산에서 이른바 오상(五傷)체험을 했다고 합니다. 오상(五傷)은 말 그대로 다섯 가지 상처를 뜻합니다. 그는 예수님처럼 두 손과 두 발, 그리고…
“십자가 외에는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 고현권 목사
2006년에 개봉한 한국영화 “타짜”는 도박의 최고수들에 대한 영화입니다. 여기에 등장하는 인물 중에 정마담(김혜수 분)이 내뱉은 대사 한마디가 한동안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습니다. “나, 이대 나온 여자야!” 그러고 보니 제가 십수년전에 만난 한 권사님도 비슷한 얘기를 했던 적이 있습니다. 이 분은 참 힘들게 이민생활을 하셨고, 후유증으로 다리까지 조금 불편한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이 분이 늘 반복적으로 저에게 했던 레퍼토리가 두 가지 있었습니다. “목사님, 저 이래뵈도 이대 영문학과 출신이예요. 그리고 김영삼 대통령이 국회의원할 때에 결혼주례를 해준 그런 사람이예요.” 예수님을 믿기 전의 바울은 “육체”와 관련하여…
“큰 글자를 쓴 이유” : 고현권 목사
최근에 한국 야당의 30대 신임 당대표의 글씨가 화제를 모은 적이 있습니다. 그의 필체는 그렇게 반듯하지 못하게 보였습니다. 이에 대해 어떤 분이 중국 당나라 때에 나온 “신언서판”(身言書判)이라는 문구를 들이대면서 은근히 비판했습니다. 인재를 판별하는 방법으로 그 사람의 신체와 말, 그리고 글씨와 판별 능력을 본다는 뜻입니다. 그런데요즘은 거의 컴퓨터나 휴대폰 자판을 통해서 글을 쓰고 의사를 전하기에 펜을 들고 종이에 글씨를 쓰는 것이 당연히 어색한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러기에 1500년전의 기준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것은 대단히 잘못된 일입니다. 바울 당시에 대서자(代書者)라는 직업이 있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