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 중에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찬송할찌니라” : 고 현권 목사

“너희 중에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찬송할찌니라” : 고 현권 목사

오늘 칼럼의 제목은 야고보서 5장 13절에서 따온 것입니다. “너희 중에 고난 당하는 자가 있느
냐 저는 기도할 것이요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찬송할찌니라” 여기 보면, 야고보는 고난
당하는 자에게 무엇을 하라고 권면합니까? 기도하라고 권면합니다. 반면에 즐거워하는 자는
찬송하라고 말합니다. 여기 “즐거워하다”는 말을 좀 더 정확하게 번역하면 “happy” 즉 “행복하
다”가 됩니다. 아무런 문제가 없고 평안하며 행복할 때에는 하나님께 감사하며 찬송하라는 것
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보면서 한가지 질문이 일어납니다. 그것은 지금 야고보의 편지를 받
는 자들의 형편과 관련된 것입니다. 야고보의 편지를 받는 성도들은 지금 극심한 고난을 당하
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이들 중에 “즐거워하는 자” 곧 “행복한 자”는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너희 중에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찬송할찌니라.”는 말은 불필요하게 보입니
다. 즉, 야고보가 고난 당하는 성도들에게 해줄 권면의 말은 오직 하나, “고난당한 자는 기도할
것이요!” 이것 뿐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야고보가 어떻게 권면한다고요? “너희 중에 고난 당하
는 자가 있느냐 저는 기도할 것이요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찬송할찌니라.”
그러면, 야고보의 이 권면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가 주목할
것은 여기 사용된 “즐거운”(happy)이란 말의 원어적 의미입니다. 시카고 휘튼 칼리지의 신약
학 교수인 더글라스 무(Douglas Moo) 박사가 이 말의 독특한 의미를 잘 설명합니다. 여기 즐
거워하다는 말은 외적 환경에 문제가 없을 때에 일어나는 감정을 표현하는 말이 아닙니다. 이
말은 외적 환경, 그것이 좋든지, 나쁘든지 간에 그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고 일어나는 마음의 기
쁨을 뜻합니다. 분명히 현실적으로 자신이 처한 외적 환경은 도무지 행복할 수 없는 형편입니
다. 그런데 하나님이 나와 함께 동행하신다는 확신이 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하나님이 합력
하여 선을 이루실 것이라는 확신이 있습니다. 이런 믿음으로 말미암아 마음 속에 염려가 사라
지고 위로와 감사가 흘러 넘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야고보가 말한 성도의 “즐거움” 곧 “행
복”입니다. 이것이 기독교 신앙의 위대함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