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보 칼럼에서 언급한 “용의 눈물”은 태종 이방원을 다룬 대하 역사 드라마입니다. 참고로 저희 부부의 공통적인 취미 중의 하나는 정통 대하 사극을 보는 것입니다. 저희 부부가 손에 꼽는 대하 역사 드라마는 김명민 배우가 열연한 “불멸의 이순신”입니다. 이 드라마를 통해 인간 이순신에 매료되었습니다. 2014년에 최민식 배우가 이순신 장군을 연기한 영화 “명량”을 보면서 받은 감동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저렇게 잘 만든 정통 사극 영화를 다시 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지난 주간에 그 소원을 풀었습니다. 한산대첩을 다룬 “한산: 용의 출현”이라는 영화를 보았기 때문입니다. 인터넷을 통해 이곳 패어 팩스에서 상영된다는 것을 듣고서 예매했습니다. 주일 사역을 다 마무리하고 저녁에 아내와 오랜만에 영화관에서 너무나 고대하던 이순신 영화를 보는 기쁨을 맛보았습니다.
영화 속에서 이순신 장군과 포로로 잡힌 준사(俊沙)라는 이름의 왜군 포로간의 대화 장면이 나옵니다. 준사가 이순신에게 묻습니다. “이 전쟁은 무엇입니까?” 이순신이 답합니다. “이 전쟁은 의와 불의의 싸움이다!” 이 한마디에 준사는 이순신에게 완전히 항복하고, 조선을 위해 왜군에 대항하는 “항왜”(抗倭)로 살아갑니다. 준사는 실존 인물이라고 합니다. 이순신은 일본자체를 적대시하지 않습니다. 다만 탐욕으로 남의 나라를 짓밟고 인명을 살상하며 약탈하는 세력을 불의로 규정한 것입니다. 물론 이것은 이순신이 실제로 한 말이 아닌, 작가의 상상력의 산물입니다. 그렇지만 정말 공감이 되었습니다.
의와 불의의 싸움! 사실 이것은 신자의 삶의 중심 화두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의의 편에 서서 불의에 저항하는 것으로 그 정체성을 확인받게 됩니다. 때로는 손해를 보기도 하고, 심지어는 자기 목숨을 내려놓을 수도 있는 상황에서 “그래도 그것은 불의입니다! 그래서 함께 할 수 없습니다!”라고 담대히 외치도록 부름을 받았습니다. 물론 그것이 현실 세계에서는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최소한 그렇게 살지 못하는 자신에 대해 탄식하며 부끄러워하는 자리만은 포기할 수 없다고 몸부림치는 것입니다. 불의 앞에서 흔들림없는 이순신의 모습에서 우리 주님이 오버랩되었습니다. (참고로 영화 한산은 Regal Fairfax Towne Center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