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20대 중반이던 때에 기독교 신앙잡지에서 읽은 한 순애보를 잊지 못하고 아직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서울 광진구에 위치한 광장교회를 담임하던 이정일 목사님의 어머님 이야기입니다. 이 글을 위해 인터넷에 검색해보았더니 이정일 목사님은 5년 전인 2017년에 별세하셨습니다. 이정일 목사님의 어머니는 일제시대 신식교육을 받은 엘리트 여성이었습니다. 결혼하여 아들 둘을 낳고 살다가 그만 남편이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홀로 어린 두 아들을 양육하면서 교편 생활하던 이목사님의 모친을 같은 교회에 다니던 엘리트 청년이 청혼을 하였답니다.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요? 그 청년의 집안에서 난리가 난 것입니다. 그러나 그 모든 편견을 극복하고 사랑과 믿음으로 두 분은 결혼에 골인하게 되었고 행복한 가정을 이루었다고 합니다.
이정일 목사님의 부모님 이야기를 떠올릴 때마다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인물이 제네바의 종교개혁자 존 칼빈과 그의 아내 이들레트 드 뷔르입니다.지난 시간 칼럼에서 칼빈이 제네바의 교회개혁가로 초빙되었다가 2년 만에 쫓겨나서 스트라스부르로 망명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거기서 교회개혁자인 마르틴 부써를 통해 위로를 받고 목회적으로 많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칼빈이 그곳에 세워진 프랑스 난민교회를 섬길 때에 마르틴 부써가 그 교회에 출석하던 한 여인을 소개해주었는데, 그녀가 이들레트입니다. 그때 그녀는 칼빈보다 열살 연상이었습니다. 그런데다 두 아이를 둔 미망인이었습니다. 무엇보다 그녀는 재세례파 신자였다가 개종한 상태였습니다. 지면 관계상 재세례파에 대한 설명은 다음에 하기로 하는데, 쉽게 말하자면 당시 정통 종교개혁자들에게 이단 사이비 취급을 받았던 집단입니다.
이런 형편에 있는 여인과 총각에다 전도유망한 청년목사가 결혼한다는 것은 당시 시대상황에서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칼빈은 이 모든 편견들과 부정적인 시각을 극복하고 이들레트와 결혼하여 9년간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병으로 그녀가 세상을 떠났을 때에 칼빈은 가장 큰 아픔을 겪었다고 고백하였습니다. 종교개혁 기념주일에 “사랑은 편견을 이긴다!”는 진리를 새겨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