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부활주일의 감격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수많은 성도들로 가득 찬 예배당에서 “예수 부활했으니 할렐루야 아멘!” 찬송이 울려 퍼지는데 마치 2000년 전 바로 그 부활의 현장으로 간 듯한 느낌이 들 정도였습니다. 원래는 마가복음 16:9절까지 다루려 했습니다. 처음 설교 원고도 그 부분까지 준비하였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다시 살펴보니 그러면 설교 시간이 너무 길어질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그 분을 과감하게 삭제하고 조정하였습니다. 거기 보면 막달라 마리아에게 부활하신 예수님이 나타나서 당신의 부활을 직접 보여주시고 제자들에게 알릴 것을 말씀합니다. 어떤 분은 막달라 마리아의 이름을 가지고 농담하기도 합니다. 왜 이름이 막달라냐 하면 기도할 때 언제나 주님께 무엇이든지 ‘막달라’라고 하여서 그런 이름이 붙은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이런 농담은 별로 유쾌하지도 않습니다. 당시 마리아라는 이름은 굉장히 흔한 이름이었습니다. 이를 구별하기 위해 출신지 이름을 앞에 붙이는 방법을 택한 것입니다. 따라서 막달라 마리아는 막달라(Magdalene)라는 동네 출신의 마리아라는 뜻입니다.
여기서 한가지 의문이 생기는 것은 예수님이 자신의 부활을 제일 먼저 알린 존재가 막달라 마리아, 즉 여인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당시 법으로는 여인의 증언은 법정에서 법적인 효력을 보장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문화적 배경을 잘 담고 있는 것이 부활장으로 유명한 고린도전서 15장입니다. 거기 보면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한 증인들의 리스트가 나오는데, 공통점은 죄다 남자라는 것입니다. 바로 이런 당시의 문화 관습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모를 리 없는 예수님이 왜 자신의 부활의 첫 목격자를 막달라 마리아, 즉 여인으로 삼으셨느냐는 것입니다.
여기에 예수님의 큰 뜻이 담겨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복음의 능력이 전하는 사람에게 달린 것이 아니라. 복음 그 자체에 구원을 주시는 생명의 능력이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는 복음 안에서 그 누구도 자신의 처지로 차별 받지 않고 동등됨을 인정받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예수님의 복음이 전해지는 곳에는 언제나 차별이 사라지고 동등됨을 회복됩니다. 예수님의 복음의 능력은 이처럼 놀랍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