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살로니가 교회는 예수 믿는다는 이유로 극심한 고난을 당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혀 믿음에서 떠나지 않고 굳게 서 있었습니다. 바울은 그 이유를 “소망의 인내”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헬라어 성경에 보면, 여기 소망이라는 말 앞에 역시 정관사가 붙어 있습니다. 즉 “the hope”(그 소망)입니다. 그 소망이란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소망을 가리킵니다. 이것때문에 극심한 고난을 인내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내의 말의 헬라어 단어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휘포모네”라고 하는데, “확고부동함, 불변함”(steadfastness)이라는 뜻입니다. 핀들레이(Findlay)라는 성경학자가 이 단어 속에 들어 있는 의미를 잘 드러냅니다. 이 말은 적군의 계속되는 공격 앞에서 굴하지 않고 흔들림없는 군인의 태도를 뜻합니다. 왜 흔들림없이 그 자리를 지킬 수 있느냐 하면, 적들보다 더 크고 강한 지원군이 온다는 약속을 전해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도착하기만 하면, 기세등등하던 적들이 일순간에 섬멸되고 자신들은 승리를 쟁취할 것입니다. 이것에 대한 확신으로 확고부동하게 그 자리를 지키는 것입니다. 이것이 “휘포모네” 곧 “인내”라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그 무시무시한 고난 가운데 감당할 수 있었던 것은 예수님의 재림에 대한 소망때문이었습니다. 여러분이 고대하며 소망하는 그 날은 어떤 날입니까? 코로나가 종식되는 날입니까? 저도 분명 그 날을 학수고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의 소망의 전부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어차피 모습을 달리한 또 다른 것이 나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차피 날이 갈수록 세상은 하나님의 대적하는 불의가 더 기승을 부릴 것입니다. 이런 세상 가운데서 성도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그것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굳건한 믿음과 소망입니다. 그 분이 오시는 날, 이 세상의 모든 불의와 타락, 모든 부조리와 질병과 죽음의 세력이 심판받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의 뜻을 따라 의롭게 살기 위해 몸부림치는 자들의 눈물을 닦아주실 것입니다. 둘째, 이런 소망에 근거하여 흔들림 없이 확고부동하게 우리가 서 있어야 할 자리를 지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소망에 대한 인내”입니다. 지금 여러분 안에 이런 소망의 인내가 있는지를 살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의 말씀으로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눅1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