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5년 4월 5일은 그 해의 부활절이었습니다. 바로 그날에 제물포항(인천의 옛 이름)에 두 명의 미국 선교사 언드우드와 아펜젤러가 함께 발을 내디디면서 본격적인 한국 선교의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런데 당시 조선 조정에서는 공식적인 선교활동을 법으로 금하였기에 교육과 의료사업을 통해 간접적으로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그 결과 1885년 10월에 아펜젤러의 사택에서 정동제일교회가 시작되었고, 1887년에는 언드우드에 의해 새문안교회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은 이들 선교사들이 들어오기 전인 1883년에 이미 한국 최초의 교회가 황해도 장연군 소래땅에서 한국인에 의해 설립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그 교회 이름이 바로 소래교회입니다. 이 교회를 세운 이는 서상륜, 서경조 형제입니다. 서상륜은 원래 의주 사람으로 압록강을 넘나들면서 장사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당시 성경번역선교사로 만주에 와 있던 존 로스 선교사를 통해 복음을 전해 듣고, 그를 도와서 한국 최초의 성경인 “예수셩교젼서”(1882)를 만드는 일을 하였습니다. 서상륜이 그의 동생인 서경조에게 복음을 전하고, 이들 형제가 황해도 소래 땅에 와서 초가집에서 첫 예배를 드리면서 시작된 교회가 소래교회인 것입니다.
1893년 10월에 캐나다 출신의 윌리암 멕켄지 선교사가 소래교회 소식을 듣고 찾아와서 교회를 섬겼습니다. 그런데 멕켄지 선교사는 소래 땅에 온 이후로 조선사람들의 의복을 입고 그들의 음식을 먹었습니다. 조선사람들과 같이 되지 않고서는 그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없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어느 성탄절 직전에 서울에 있던 언드우드 선교사가 그에게 차, 빵, 설탕, 우유, 통조림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멕켄지 선교사가 이것을 버리면서 그 이유를 글로 남겼다고 합니다. 너무나 고맙지만 이것들을 먹으면 다시 조선 음식을 먹지 못할까봐 그렇게 했다는 것입니다. 결국 영양실조와 퐁토병으로 한국에 온지 5년만인 1898년에 별세하였습니다. 그의 부고가 캐나다에 전해지면서 수많은 젊은이들이 한국선교에 헌신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근본 하나님의 본체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하지 않으시고 자기를 비우시고 우리와 같은 사람이 되어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이 오버랩됩니다. 윌리암 멕켄지 선교사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