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처음 발걸음을 내디딘 미국 선교사님이 전도를 하러 나갔다가 초상집을 지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집안에서 들린 소리가 선교사님을 놀라게 만들었습니다. 그 소리의 내용은 “아이고, 아이고”였습니다. 우리에게 “아이고”는 일종의 탄식의 말입니다. 경상도 말로 하면 “우짜면 좋겠노?”이고, 전라도 사투리로 하면 “으째 쓰가?” 정도가 되겠지요. 그런데 미국에서 온 선교사님의 귀에는 “I go!”로 들린 것입니다. 즉 나는 이제 간다는 말입니다. 이것을 들은 선교사님이 말했답니다. “한국 사람들, 참 대단히 성경적인 죽음관을 가졌네요. 죽은 자가 주님께로 간다고 말하니 이 얼마나 귀한 생각입니까?” 죽음에 대해 쓰이는 한자 표현이 별세(別世)입니다. 이 세상을 떠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신자에게는 이 육신의 장막을 벗어나고 세상을 떠나서 가는 방향을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천상에 계신 우리 주님의 품입니다. 거기서 참된 안식을 누리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성도의 죽음은 복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지난 수요일 새벽에 우리가 사랑하고 존경하던 박영일 장로님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별세하셨습니다. 팔순을 한달 앞둔 작년 3월에 장로님이 폐암 말기 진단을 받았다면서 저에게 알리셨습니다. 그때 장로님이 하셨던 말씀을 잊지 못합니다. “목사님, 예수를 전혀 모르던 제가 39살에 미국 이민와서 예수님을 믿고 구원의 은혜를 받고 40년을 살았습니다. 그러니 저는 복된 인생입니다. 그리고 언제든지 주님의 품에 안길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지난 1월 중순까지 연약한 몸으로 찬양대의 자리를 지키셨고, 분기에 한번씩 남성 중창단에 속하여 귀한 특송을 하셨습니다. 끝까지 충성을 다하신 것입니다. 2월 20일 저녁에 이원종 장로님과 함께 심방을 하였습니다. 말씀과 기도 후에 장로님의 손을 붙잡고 귀에 말씀을 드렸습니다. “장로님, 수고하셨습니다. 이제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셔서 장로님의 영혼을 속히 천국으로 불러주사 육신의 모든 고통에서 벗어나길 기도합니다.” 그랬더니 응답의 표시로 입술을 오물거렸습니다. 그 다음날 새벽에 주님은 부족한 저의 기도를 들어주사 장로님을 무거웠던 육신의 장막에서 하늘의 장막으로 옮겨주신 것입니다. 목요일 오전에 여러분의 성도님들과 심방하여 태수영 권사님을 위로하였습니다. 이 모든 과정을 하나님의 은혜로 받아들이시고 감사하시는 권사님의 모습으로 인해 저희들이 도리어 위로를 받았습니다. “성도의 죽는 것을 여호와께서 귀중히 보시는도다!”(시116: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