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좌제— 고현권 목사

연좌제— 고현권 목사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사극을 보다보면 역적들을 처단할때 자주 언급되는 말이 있습니다. 바로 삼족(三族)을 멸하라는 말입니다. 삼족이란 본가, 처가, 외가를 뜻합니다. 한 사람이 반역죄에 연루되면 그의 본가는 말할 것도 없고, 처가와 외가까지 죽임당하거나 관노비로 전락하는 형벌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연좌제(連坐制, collective punishment)라고 합니다. 이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시행되었습니다. 한국사회에서 연좌제는 1980년에 공식적으로 폐지되었지만, 한동안 그 잔재가 남아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친인척 가운데 사상적으로 불온한 경력을 가진 이가 있다면, 군인이나 공무원이 되는 길을 막은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에 보면 연좌제를 철저히 거부하는 말씀이 나옵니다. “아버지는 그 자식들로 말미암아 죽임을 당하지 않을 것이요 자식들은 그 아버지로 말미암아 죽임을 당하지 않을 것이니 각 사람은 자기 죄로 말미암아 죽임을 당할 것이니라”(신명기 24:16) 아버지가 잘못했다고 해서 그 자식까지 죽이는 것은 잘못되었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자식이 대역죄를 지었다고 해서 그 아버지가 죽임당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실제로 적용된 사례를 성경은 언급하고 있습니다. 민수기 16장을 보면 모세와 아론의 리더십을 대적하는 무리들이 일어나는데, 그 주동자가 레위지파의 고라였습니다. 그 결과 고라와 그를 따르던 반역의 무리들이 땅이 갈라지면서 땅밑으로 떨어져서 몰살되었습니다. 그런데 민수기 26장 11절에 보면 놀라운 내용이 나옵니다. “고라의 아들들은 죽지 아니하였더라.” 시편에 보면 종종 “고라 자손들의 시”라는 제목이 붙어 있는데, 바로 그 반역한 고라의 살아남은 후손들을 뜻합니다. 이들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놀라운 일을 감당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아직도 우리 마음에는 다른 이들의 과거 행적에 대해 다시 떠올리는 또 다른 연좌제가 있음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은 독생자의 피로 우리 죄를 사하시면서 우리의 지난 죄에 대해 기억하지도 않으신다고 하셨습니다. 이런 사랑을 받은 우리일진대, 다른 이들의 과거에 대해 더 이상 언급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이제 우리의 마음에 뿌리내린 연좌제와 결별해야 합니다. 이것이 진정 말씀을 순종하는 하나님의 백성의 삶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