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시절 라디오에서 김승덕의 “아베 마리아”라는 노래를 들었습니다. 사랑하던 남녀가 서로 헤어지게 되었습니다. 쓸쓸히 뒤돌아서는데 명동성당에서 종소리가 울려퍼졌습니다. 그때 마리아에게 방황하는 자신에게 용기를 달라면서 기도하는 내용입니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아베 마리아”하면 슈베르트가 아니겠습니까? 소프라노가 “아베 마리아 그라티아 플레아나”(Ave Maria, glatia pleana)로 시작되는 가사를 부르는 것을 들을때마다 왜 그렇게 영혼이 정화되는 느낌이 드는지요! 라틴어로 된 이 가사를 번역하면 대략 이렇습니다. “은총이 가득한 마리아여, 기뻐하소서!)
이 내용은 누가복음 1장에 나오는 성경말씀입니다. 천사 가브리엘이 어린 소녀(대략 14-15세 정도로 추정) 마리아에게 나타나서 이렇게 말합니다.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지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눅1:28) 이 얼마나 좋은 인사입니까? 그런데 그 다음에 이어진 말은 소녀 마리아에게는 감당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눅1:31) 마리아는 지금 요셉과 정혼한 상태입니다. 정혼은 양가 부모가 자녀들을 결혼시키기로 약속한 것을 가리키는데, 법적으로 부부이지만 정식 결혼때까지는 동침하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마리아가 천사에게 뭐라고 말합니까? “나는 남자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눅1:34) 마리아는 대단히 상식적이고 과학적으로 접근했습니다. 아이가 생기는 것은 남녀가 동침하는 것을 전제로 합니다. 그런데 자신은 남자를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처녀인 자신이 아이를 낳는다는 말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말이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에 대해 최초로 의심한 사람은 다름 아닌 마리아 자신이었습니다.
그러나 마침내 마리아는 하나님의 뜻을 이렇게 받아들입니다. “마리아가 이르되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눅1:38)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은 마리아에게는 말로 다할 수 없는 십자가였습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자신의 근본적인 존재를 자인하게 되는데, 자신은 “주의 여종”이라는 것입니다. 주님의 기쁨이 된다면 그 어떤 것도 감당하겠다는 것입니다. 그 어머니의 그 아들이었습니다. 예수님도 그렇게 기도하셨습니다.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