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에 25살 꽃다운 나이의 여배우가 안타깝게도 생을 마감하였습니다. 그 여배우를 처음 본 것은 그녀가 10살때에 출연한 영화 “아저씨”(2010년)였습니다. 어떻게나 연기를 잘 하던지, 정말 미래가 너무나 기대되던 촉망받던 연기자였습니다. 그렇게 배우로 잘 성장하나 싶더니 돌연 음주운전으로 적발되면서 각종 인터넷에 그녀의 이름이 도배되었습니다. 제 큰 딸과 나이가 비슷하기에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 나이에 그런 실수를 할 수도 있다는 넉넉한 마음으로 바라보았지만, 세상의 언론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마치 맹수가 먹잇감을 물어뜯듯이 그렇게 심하게 다루었습니다. 그리고 이른바 악플이 쏟아졌습니다. 그 내용은 대부분, 조롱과 욕설과 저주였습니다. 한 인격을 죽이는 살인 그 자체였습니다. 몇년이 지난 후 한 미니 시리즈에 출연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다시 연예담당 기자들이 미쳐 날뛰었습니다. 지나간 실수를 들추어내면서 맹비난을 퍼부었습니다. 결국 그녀는 중도 하차하고 말았습니다.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리게 되자, 모든 것을 내려놓고 아르바이트에 나섰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안 사람들이 다시 인터넷 사이트에 그 사실을 올리면서 비난하였고 이것 역시 그대로 뉴스거리가 되었습니다. 결국 일을 그만 두게 되었습니다. 아마도 절망이 그녀의 마음을 뒤덮었겠지요. 결국 그녀는 그렇게 자신의 생을 마감하였습니다. 그 소식을 듣고 얼마나 마음이 아프던지요!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그렇게 날뛰면서 잡아먹을 듯이 공격해대던 언론이 그녀의 죽음을 애도하면서 앞으로 이런 몰이식의 기사는 쓰지 말아야 된다고 자성의 목소리를 낸 것입니다. 제가 속으로 웃었습니다. 왜냐하면 이들은 또 다른 먹잇감이 나타나면 똑같은 짓을 반복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한 사람이 죽어야 끝나는 무서운 일이 또 반복된 것입니다.
예수님도 공생애 기간 내내 바리새인과 율법학자인 서기관들에 의해 시달려야 했습니다. 이들은 자신의 일을 내려놓고 예수님 뒤를 따라 다니면서 일거수 일투족에 대해 사사건건 시비를 걸었습니다. 그들의 유일한 관심은 어떻게 하면 예수를 죽일까 였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이들 바리새인들의 악랄함과 패역함이 우리 안에도 내재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이기는 방법은 단 하나 매순간마다 자신을 부인하고 옛사람을 십자가에 못 박아버리는 것입니다. 내가 죽어야 이 무서운 저주가 끝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