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이 되면 반사적으로 떠오르는 싯귀가 있습니다. “4월은 잔인한 달!” 그리고 이것을 말한 이가 T.S. 엘리엇이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습니다. 이 표현은 영국의 시인 토마스 스턴스 엘리엇(Thomas Stearns Eliot, 1888-1965)가 1922년에 발표한 장편시 《황무지》(The Waste Land)의 제1부의 첫줄에 나옵니다. 참고로 이렇게 시작됩니다.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 내고/ 추억과 욕정을 뒤섞고/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 그가 왜 이런 표현을 썼는지에 대해 알고 싶어서 몇 분의 글을 찾아보았습니다. 공통된 견해는 1차 세계대전을 겪은 후에 유럽인들이 가졌던 절망감을 이렇게 묘사하였다는 것입니다. 4월은 만물이 소성하며 꽃을 피우는 생명의 계절인데, 완전히 폐허가 된 유럽의 도시들과, 무엇보다도 피폐해진 사람들의 마음은 더 이상 회복과 재기가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니 왜 그가 그토록 절망적인 언어를 사용했는지가 조금 이해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유럽을 이렇게 만드는데 일조한 것은 19세기 독일에서 시작되어 전유럽을 휩쓸었던 자유주의신학이었습니다. 자유주의신학자들은 초자연적인 하나님의 역사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죄인의 구원을 부정하였습니다. 그들은 이성과 자유의지를 가진 인간이 얼마든지 이 세상 위에 윤리 도덕적인 가치에 근거한 하나님 나라를 건설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이들에게 예수님은 윤리적인 인간의 모델에 불과할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1차세계대전이 그들의 주장이 얼마나 허구인가를 그대로 폭로하였습니다. 이성을 가진 인간이 과학문명을 가지고 서로를 향해 적대시하면서 살상과 파괴를 자행하는 괴물이 된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유럽은 이것을 보고서도 다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으로 돌아가지를 못했습니다. 그래서 파괴된 도시는 재건되고 다시 찬란한 문명을 회복하였지만, 교회는 참 복음의 능력을 맛보지 못함으로 아직도 잔인한 4월을 벗어나지 못하였습니다. 이것을 벗어날 길은 오직 성경이 말씀하는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우리 인간의 부패와 타락, 그리고 죄와 죽음에서 우리를 건져낼 유일한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자와 부활의 복음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이것만이 잔인한 4월을 생명의 달 4월로 되돌릴 수 있습니다! 그것은 그렇고 마음을 다잡고 433행으로된 “황무지” 읽기에 도전했지만 중간에 가서 그만 잠들고 말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