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녹푸르던 여름날이 저물고 간 자리에 풀벌레 소리 요란한 가을 소나타의 계절이 다가왔습니다. 아침저녁으로 서늘하게 느껴지는 공기와 높고 푸른 쪽빛 하늘, 그리고 낮게 깔리는 가을볕에 어느새 우리 곁에 가을이 조용히 속삭이고 있습니다. 마치 깨복쟁이 친구처럼 친근하고 익숙하면서도 늘 새로운 연주소리로 우리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콧노래를 흥얼거리게 합니다.
가을의 문턱에서 처음 듣는 소리는 바람소리입니다. 시원하면서도, 서늘한, 부드러우면서도 때론 새침한 바람소리는 마침 마른 나뭇잎과 어우러져 외로움과 서운함을 연주합니다. 이 바람이 창문을 두드리고, 길가에 떨어진 낙엽을 굴릴 때면 쓸쓸한 운율을 만들어 냅니다. 그 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꽃편지지에 연애편지 쓰던 옛 기억들이 깨어나고 잊혀진 연인의 그림자가 아른거립니다.
두 번째로 들려오는 소리는 별이 빛나는 밤에 찾아옵니다. 뙤약볕의 열기가 식어가는 저녁, 노을 물들 때 즈음, 세상 모든 풀벌레 소리는 합창과 중창으로 제창과 독창으로 들려옵니다. 이들의 노랫소리는 여름날의 풀벌레 노랫소리와는 다르게 차분하고 평화롭습니다. 밤하늘의 고요함과 함께 어우러져 깊은 사색의 시간을 선사합니다. 창문너머로 들려오는 이 소리를 듣다 보면, 치열했던 여름한철의 전쟁 같은 소리는 물러가고 넉넉한 가을 들판에서 무르익어가는 풍요로운 소리만 가득합니다.
지난 주일오후 호산나 찬양대와 임마누엘 찬양팀 그리고 몇몇 분들과 가을 음악회를 열었습니다. 소박하고 가족같은 작은 음악회였습니다. 그리 내세울 것도 없고, 따로 자랑할 것도 없는, 그러나 가을이 깊어가는 길목에서 우리는 사색 빠져 낭만과 삶에 대하여 이야기했습니다. 내년에는 가을의 길목에서 아름답고 평안한 멜로디를 친구들과 연인들과 이웃들과 함께 나눌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