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말에 금의환향(錦衣還鄕)이란 말이 있습니다. 타지에서 성공하여 고향에 당당하게 돌아간다는 뜻입니다. 그것을 사람들에게 알리는 방편으로 당시로서는 최고의 가치를 지닌 비단옷을 입고 귀향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과 너무나 거리가 먼 모습으로 고향 땅을 밟는 사람이 나오미입니다. 고향을 떠날 때는 남편과 두 아들, 그리고 얼마간의 재산이 있었는데 이방 땅 모압에서 그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빈털터리가 되어 고향인 베들레헴에 돌아온 것입니다. 나오미가 베들레헴에 들어오자 어떤 일이 벌어집니까? 베들레헴 사람들이 그녀를 알아보고 이렇게 말합니다. “이가 나오미냐?” New Living Translation이라는 쉽게 번역된 영어성경에 보면,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Is it really Naomi?” 뉘앙스를 살려 번역하면 이렇게 됩니다. “당신이 진짜 나오미 맞아?” 분명 나오미는 맞는데, 10년 전과 비교해서 세상 풍파에 시달리면서 너무나 초라해진 모습이었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해 나오미가 한 말이 무엇입니까? “나를 나오미라 칭하지 말고 마라라 칭하라 이는 전능자가 나를 심히 괴롭게 하셨음이니라”(룻1:20) 오늘 설교 본문에도 “마라”기 나오는데, 마라는 “쓰라림”(bitterness)이라는 뜻입니다. 한글성경에 “괴롭게 하셨다”라고 되어 있는데, 히브리어 성경으로 보면 “마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나오미는 자신의 이 모든 “마라”의 근원이 하나님에 의해서 비롯되었다고 말합니다. 왜 하나님이 나오미의 삶을 마라같이 쓰라리게 만드셨을까요? 왜 하나님이 그녀의 삶을 텅 비게 만드셨을까요? 돌아 보건대 지난 10년간 나오미의 삶은 하나님 아닌 헛된 것으로 가득한 삶이었습니다. 이것을 비우지 않으면 진정한 충만함을 맛볼 수 없는 상태가 된 것입니다. 이것 때문에 하나님은 겉으로 보기에는 너무나도 고통스런 방법으로 그녀에게 비움을 허락하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주신 쓰라림과 비움은 그 자체로 끝나지 않습니다. 그 연단의 과정을 거친 후에 하나님이 하나씩 모든 것을 새롭게 채워 주셨습니다. 어떤 분이 이것을 “채움을 위한 비움의 신비”라고 말하더군요. 정말 기막힌 표현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오늘 우리의 삶 속에 나오미와 같은 아픔과 고난이 있습니까? 하나님이 그런 고난과 비움을 통하여 더 놀라운 채움으로 역사하심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넉넉히 감당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