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제목을 보신 분들은 아실 것입니다. 이것이 어디서 나왔는지 말입니다. 바로 오늘 설교 본문인 시편 133편 1절을 그대로 인용한 것입니다. 이 구절을 묵상하다가 한국의 초창기 교회 역사의 한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1892년에 미국 북장로교회의 파송을 받아 조선땅에 도착한 사무엘 무어 선교사는 서울의 곤당골(오늘날 소공동)을 중심으로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그 중에 박성춘이라는 사람이 복음을 받아들였는데 그는 당시 조선사회에서 최하층 천민이었던 백정출신었습니다. 자신에 대해 전혀 차별없이 대하는 무어 선교사의 모습에 감동을 받아 박성춘은 신앙생활에 열심을 내면서 헌신적인 신자의 삶을 살았습니다. 교회가 부흥되면서 곤당골에서 승동(오늘날의 인사동)으로 교회를 이전하였고 승동교회라고 개명을 하였습니다. 1911년 첫 장로를 선출하였는데 바로박성춘이 장로로 피택되었습니다. 이것에 불만을 가진 일부 양반 출신의 신자들이 교회를 떠나는 아픔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양반출신이면서도 백정출신인 박성춘의 장로직을 인정하면서 교회를 묵묵히 지킨 이들도 있었습니다. 그중에는 왕족 출신인 이재형이 있었는데 1914년 장로로 피택되어서 박성춘과 함께 승동교회를 섬기게 되었습니다. 최상위 계층인 왕족 출신과 최하위 천민인 백정 출신이 복음안에서 차별을 극복하고 함께 교회를 섬기게 된 것입니다. 여기에 가장 잘 어울리는 성경구절이 시편133:1절입니다. “형제가 연합하여 서로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이것이 복음의 능력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인종과 혈통, 신분과 계급, 남자와 여자의 차별이 있을 수 없습니다. 모두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인 것입니다. 행복한 교회는 바로 이런 모습을 회복하는 교회입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선하고 아름다운 형제자매의 연함과 동거가 있는 교회를 꿈꾸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