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소식 (Page 31)

교회소식 (Page 31)

“야고보의 형제 유다”: 고현권 목사

유다라는 이름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이상하리만치 불편하게 다가옵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을 은 삼십에 팔아버린 가룟 유다때문입니다. 그런 이유에서인지 아이의 이름을 “쥬드”(Jude)로 짓는 사람은 별로 보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원래의 뜻은 “찬송”이라는 뜻을 가진 좋은 이름입니다. 저에게 아주 좋은 이미지를 준 유다 혹은 쥬드라는 이름은 세 경우입니다. 첫째는 비틀즈의 “헤이 쥬드”(Hey Jude)라는 노래입니다. 이 노래는 부모의 이혼으로 고통을 당하는 존 레논의 아들 줄리안을 위로하기 위해 폴 매카터니가 만든 노래입니다. 참 마음을 따뜻하게 감싸는 노래입니다. 둘째는, 캘리포니아에 있는 세인트 쥬드 병원입니다. 남가주에서 선한…

“야고보(James)”: 고현권 목사

지난 주일부터 야고보서 강해를 시작하면서 야고보(James)의 이름에 대해서 관심이 생겼습니다. 제가 아는한 저희 교회에는 ‘제임스’라는 영어 이름을 쓰는 분이 세 분 계십니다. 권영제 장로님과 구본석 장로님, 그리고 손창호 장로님입니다. (더 계시면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손장로님의 경우는 제임스의 애칭인 ‘지미’(Jimmy)를 사용합니다. 사실 야고보는 구약에 나오는 야곱(Jacob)과 같은 이름입니다. 신약성경은 헬라어로 기록되었는데, 헬라 사람들의 남자 이름은 주로 ‘오스’(os)로 끝납니다. 이런 언어 습관 때문에 야곱의 이름을 ‘야고보스’(Jacobos)라고 표기한 것입니다. 한글성경이 헬라어 그대로 ‘야고보스’라고 하지 않고 ‘야고보’라고 번역한 것은 상당히 안타깝습니다.  그런데 야고보스가 라틴어로 표기되면서…

“주안에 있기에!” : 고현권 목사

바울이 데살로니가전후서를 쓴 시점은 그가 유대인들의 선동과 훼방으로 데살로니가에서 추방된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습니다. 그의 편지에는 데살로니가교회 성도들에 대한 염려와 근심이 가득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데살로니가교회 성도들의 형편때문입니다. 당시 데살로니가교회는 예수님을 믿은지 겨우 두 달도 채 안된 갓난쟁이 신자들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더군다나 목회자의 부재 상황에서 혹독한 핍박을 감당한다는 것은 어찌보면 불가능한 것처럼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에게 전해진 소식은 데살로니가교회가 믿음 가운데 든든히 서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했을까요? 바울은 그 질문에 대한 답을 데살로니가전서를 시작하면서 밝힙니다. “하나님 아버지와…

“부활주일예배 단상”: 고현권목사

부활 주일이었던 지난 주일 아침에 교회에 도착하는 순간부터 마음이 약간 흥분되었습니다. 일년 이상 다수의 성도들이 동영상으로 가정에서 예배를 드렸는데, 백신 접종이 조금씩 진행된 상황에서 얼마나 출석할 것인지에 대한 궁금함이 가득했습니다. 제 방에서 기도후에 설교원고를 다시 한번 살펴보고 계단을 통해 본당으로 내려가서 힐끗 주차장을 보았습니다. 지난 주만해도 교회당 뒤 주차장이 거의 텅 비어 있었는데, 그 자리에 성도님들의 낮익은 차들이 주차되어 있었습니다. 예배당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  너무나도 그리운 얼굴들이 여기 저기 보였고, 비록 마스크를 쓴 상태이지만, 눈빛으로 따뜻한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감사함으로 그…

“나의 주, 나의 하나님”: 고현권 목사

제가 좋아하는 찬송 중의 하나가 찬133장입니다. 특별히 3절을 부를 때마다, 제 목이 메이곤 합니다. “허물 많은 베드로를 용서하시고 의심 많은 도마에게 확신 주시고 사랑하는 그의 제자를 가슴에 안고 부드러운 사랑으로 품어주셨네.” 여기 등장하는 도마(Thomas)에게 붙은 형용사는 “의심 많은” 입니다. 사망권세를 이기고 부활하신 예수님이 제자들을 찾아와서 평강을 선포하셨을 때에, 그 자리에 도마가 없었습니다. 나중에 돌아온 도마에게 다른 제자들이 흥분하며 예수님의 부활을 전해주었습니다. 그러자 도마가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그 손의 못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보지…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 고현권 목사

오늘은 종려주일(Palm Sunday)입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에 사람들이 종려나무   가지를 꺽어서 흔들면서 예수님을 맞이하였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에 타신 것이 무엇이었습니까? 그렇습니다. 나귀, 그것도 아직 타본 적 없는 나귀 새끼를 타고 들어오신 것입니다. 어떤 면에서 전혀 어울리지 않는 모습입니다. 그러면 왜 예수님이 나귀 새끼를 타고 들어오셨을까요? 그것에 대해 마태는 이렇게 기록합니다. “이는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마21:4)  여기 나오는 선지자는 스가랴입니다. 스가랴는 예수님이 오시기 약 500년 전에 활동했던 선지자입니다. 스가랴서 9:9절에 보면 이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