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s from 2021 (Page 6)
“묵상, 이렇게 해보십시오!” : 고현권 목사
얼마 전에 UCLA에서 한국 기독교사 석좌 교수로 봉직하시는 옥성득 교수님의 글을 읽고 깊이 공감한 바가 있어서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옥성득 교수님은 지난 30년간 1885년부터 1910년까지 한국 초기 기독교 형성 연구에 매진하고 있는 귀한 교회역사학자입니다. 제가 최근에 읽은 글은 성경을 읽는 방법에 관한 것입니다. 옥교수님에 따르면, 모든 종교의 경전은 소리를 내어 읽도록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옛날 서당에서 천자문을 배우고, 점점 배움의 깊이를 더하여 유교의 경전인 사서삼경(四書三經)을 익히는 방법은 훈장의 선창을 따라 큰 소리로 따라 읽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을 계속 반복적으로 하다보면, 어느…
“싹난 지팡이” : 고현권 목사
민수기 16장에 보면, 이른바 ‘고라의 반역 사건’이 나옵니다. 레위지파인 고라가 대제사장 아론과 모세를 대항하여 일으킨 사건입니다. 결론을 말씀드리면, 이 일로 그를 따르던 추종자 250명도 함께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 사건을 겪고도 많은 백성들은 아론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으려 했습니다. 이에 대해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각 지파 대표의 지팡이를 가져와서 거기에 그 사람의 이름을 쓰고 지성소에 두도록 하라.” 다음날에 보았더니, 오직 레위 지파의 대표인 아론의 지팡이에 만 싹이 나고 꽃이 피고 열매가 맺혀 있었습니다. 이것을 통해 하나님은 대제사장으로서의 아론의 권위를 확실하게…
“Mother’s Day를 맞이하며” : 고현권 목사
지난해 Mother’s Day, 어떠셨습니까? 감염의 위험 때문에 부모님을 모시고 식당에서 함께 즐거운 시간을 가지는 것은 고사하고, 심지어 집에서 함께 모여 축하 케이크를 나누는 것 조차 힘든 처지였습니다. 그런데 올해 Mother’s Day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가 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자못 큽니다. 이 시즌이 될때마다 흥얼거리게 되고, 그때마다 코끝이 찡해지는 노래가 바로 “어머니 마음”입니다. 1930년대에 양주동 선생이 작사하고 이흥렬 선생이 작곡한 참 감동적인 노래입니다. 나실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기르실제 밤낮으로 애쓰는 마음 진 자리 마른 자리 갈아뉘시며/ 손발이 다 닳도록 고생하시네…
“야고보의 형제 유다”: 고현권 목사
유다라는 이름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이상하리만치 불편하게 다가옵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을 은 삼십에 팔아버린 가룟 유다때문입니다. 그런 이유에서인지 아이의 이름을 “쥬드”(Jude)로 짓는 사람은 별로 보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원래의 뜻은 “찬송”이라는 뜻을 가진 좋은 이름입니다. 저에게 아주 좋은 이미지를 준 유다 혹은 쥬드라는 이름은 세 경우입니다. 첫째는 비틀즈의 “헤이 쥬드”(Hey Jude)라는 노래입니다. 이 노래는 부모의 이혼으로 고통을 당하는 존 레논의 아들 줄리안을 위로하기 위해 폴 매카터니가 만든 노래입니다. 참 마음을 따뜻하게 감싸는 노래입니다. 둘째는, 캘리포니아에 있는 세인트 쥬드 병원입니다. 남가주에서 선한…
“야고보(James)”: 고현권 목사
지난 주일부터 야고보서 강해를 시작하면서 야고보(James)의 이름에 대해서 관심이 생겼습니다. 제가 아는한 저희 교회에는 ‘제임스’라는 영어 이름을 쓰는 분이 세 분 계십니다. 권영제 장로님과 구본석 장로님, 그리고 손창호 장로님입니다. (더 계시면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손장로님의 경우는 제임스의 애칭인 ‘지미’(Jimmy)를 사용합니다. 사실 야고보는 구약에 나오는 야곱(Jacob)과 같은 이름입니다. 신약성경은 헬라어로 기록되었는데, 헬라 사람들의 남자 이름은 주로 ‘오스’(os)로 끝납니다. 이런 언어 습관 때문에 야곱의 이름을 ‘야고보스’(Jacobos)라고 표기한 것입니다. 한글성경이 헬라어 그대로 ‘야고보스’라고 하지 않고 ‘야고보’라고 번역한 것은 상당히 안타깝습니다. 그런데 야고보스가 라틴어로 표기되면서…
“주안에 있기에!” : 고현권 목사
바울이 데살로니가전후서를 쓴 시점은 그가 유대인들의 선동과 훼방으로 데살로니가에서 추방된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습니다. 그의 편지에는 데살로니가교회 성도들에 대한 염려와 근심이 가득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데살로니가교회 성도들의 형편때문입니다. 당시 데살로니가교회는 예수님을 믿은지 겨우 두 달도 채 안된 갓난쟁이 신자들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더군다나 목회자의 부재 상황에서 혹독한 핍박을 감당한다는 것은 어찌보면 불가능한 것처럼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에게 전해진 소식은 데살로니가교회가 믿음 가운데 든든히 서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했을까요? 바울은 그 질문에 대한 답을 데살로니가전서를 시작하면서 밝힙니다. “하나님 아버지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