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살로니가 전서 5장 16-18절에 보면,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말씀이 나옵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 말씀이 요즘 제 마음을 붙들고 있습니다. 이것을 묵상하면서 받은 은혜를 세 번에 걸쳐서 나누고자 합니다. 성경이 말하는 기쁨은 한 가지 특징이 있는데, 그것은 기쁨이 언제나 하나님의 영광과 성도를 향한 하나님의 약속과 관련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잘 보여주는 말씀이 고린도후서 12:9-10절입니다. “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 지라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니라” 바울은 자신 몸의 “가시”를 제거해 주시도록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그 기도를 거절하십니다. 거절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내 능력이 너의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이에 대해 바울은 크게 기뻐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약한 것을 자랑합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연약함이 오히려 주님의 능력을 더 드러내는 수단이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바울처럼 이런 기쁨을 누리지 못하는 이유는 오직 하나입니다. 우리의 삶의 초점이 예수 그리스도 중심에 맞춰져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기쁨을 언제나 자기중심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이런 기쁨을 맛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기쁨의 헬라어 단어는 “카라”입니다. 그런데 이 말은 “카리스”에서 유래했는데, 카리스는 “은혜”를 뜻합니다. 이것이 보여주는 것은 무엇입니까? 참된 기쁨은 참된 은혜의 산물이라는 것입니다. 무엇이 참된 은혜입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독생자를 대신 죽게 하신 것이 참된 은혜입니다. 그런 은혜를 받은 자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해 죽는 주님 중심의 삶이어야 합니다. 다른 말로 하면 주님의 영광을 추구하는 삶입니다. 그럴 때 나오는 것이 바로 기쁨이라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