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소식 (Page 40)

교회소식 (Page 40)

“교회를 위해 만물의 머리가 되신 주님” : 고현권 목사

하나님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하늘에 올리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하나님의 우편에 앉히셨습니다. 여기 “우편”이라는 것은 히브리적인 의미에서 “권위와 권세”를 뜻합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우편에 앉히셨다는 것은 아버지 하나님과 동등한 권위와 권세”를 부여하신 것을 뜻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예수님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주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에베소서 1장 22절을 보겠습니다. “또 만물을 그 발 아래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주셨느니라” 이 구절을 영어성경으로 보면 그 뜻이 보다 더 잘 드러납니다. “And God placed all things under his feet and appointed him to…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법”: 고현권 목사

미디안의 10만 대군이 이스라엘을 침공했을 때에, 기드온 앞에 삼만 이천명이 모여 들었습니다. 솔직하게 이 숫자로는 미디안의 10만 대군을 상대하기 역부족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보신 하나님이 뭐라고 하십니까? “너무 많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두려움에 떠는 자는 집으로 돌아가라고 했더니, 만명이 남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것도 너무 많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만명을 물가로 데리고 가서 물을 마시게 합니다. 그 중에 무릎 꿇고 마시는 자는  9천 7백명이고, 손으로 움켜 입에 대는 자는 300명이었습니다. 이것을 보고 하나님이 기드온에게 명하십니다. “너는 여기 삼백명을 데리고 가서 싸워라!” 이 말씀을 보고…

“이슬람과의 대화” : 김인광 목사

이번주 미국 주요뉴스를 보면 코로나 변의 뉴스, 허리케인 아이다로인한 피해, 타호강 지역의 산불 피해, 아프가니스탄 미군 철수등이 보입니다. 그중에 아프가니스탄에 관련된 이야기가 많이 눈에 띄었습니다. 어떻게 지난 20년간의 노력이 일주일만에 물거품이 될수있나? 각국의 아프가니스탄 난민을 향한 여론, 미군의 철수과정과 몇몇나라들의 자국민 구출작전의 이야기등 많은 뉴스가 보입니다. 이 많은 아프가니스탄 관련 뉴스들중 많이 반복되는 단어는 “신뢰” 입니다. 탈리반이 새정부를 인정해달라며 여성들에게 잘 할것이란 발표를 “신뢰”할수 있는가? 저의 개인적인 생각은 “신뢰할수 없다” 입니다. 그 이유는 어린 나이에 이슬람 사회에 살아 보았기 때문입니다. …

“아나데이아”: 고현권 목사

예수님이 기도에 대해 하신 비유 속에 결론으로 하신 말씀이 누가복음 11:8절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비록 벗됨을 인하여서는 일어나 주지 아니할찌라도 그 강청함을 인하여 일어나 그 소용대로 주리라.” 강청(强請)의 영어단어가 “persistence”인데, 이 말의 뜻은 “끈득거지게 매달림”입니다. 많은 분들은 이 말씀을 “강청기도”의 근거로 삼습니다. 강청기도란 응답을 받을 때까지 끊질기게 매달리는 기도를 뜻합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기도는 그런 자세로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존경하는 고(故) 박윤선 박사님의 기도에 대한 설교집 제목이 «기도, 죽기내기로 기도하라»입니다. 참고로 “죽기내기로”는 “죽기 살기로”의 평안도 사투리라고 합니다. 박윤선 박사님은 고령의…

“의복을 바꾸십시오”: 고현권 목사

야곱이 세겜이라는 곳에 머물고 있었을때에, 외동딸 디나가 세겜 땅의 추장의 아들에 의해 못쓸 짓을 당하게 됩니다. 이에 분노한 야곱의 아들들이 여동생을 겁간한 추장의 아들뿐만 아니라 성의 모든 남자들을 죽이고 재물을 약탈하는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이 일을 들은 야곱이 두려움에 사로잡힙니다. 이 소식을 들은 주변의 가나안 족속들이 자신을 결코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때 하나님이 야곱을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벧엘로 올라가서 환난날에 도우셨던 하나님께 단을 쌓으라고 명하셨습니다. 이에 용기를 얻은 야곱이 가족들을 데리고 벧엘로 올라갔습니다. 그런데 올라가기 전에 그가 가족들에게 세…

“사랑이 없으면”: 고현권 목사

어떤 성도님이 저에게 얼마 전에 들려준 이야기입니다. 최근에 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있었는데, 건너편 테이블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렸습니다. 고개를 들어 보니한 분이 방언으로 식사기도를 하고 있었고, 함께 있던 분들이 아멘으로 화답하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조금 지나치지 않았나 하면서 저에게 의견을 구하였습니다. 바울은 방언의 은사를 그렇게 공개적으로 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분명히 지적합니다. 지면 관계상 일일이 설명할 수 없기에 고린도전서 14장을 읽어볼 것을 권합니다. 방언은 기독교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종교학자들에 따르면, 각 종교마다 신비한 언어적 체험으로서의 방언과 유사한 현상이 존재합니다. 얼마 전에 읽은 자료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