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소식 (Page 9)
아름다운 마무리
지난 주일예배 중에 말씀드린 대로 주일예배후에 식사를 마친 후에 필라델피아로 향하였습니다. 필라 안디옥교회를 30년간 담임하셨던 호성기 목사님의 원로 목사 추대식과 제 후배인 임재영 목사님의 담임목사 취임식에 축사 및 권면의 말씀을 부탁받았기 때문입니다. 제가 필라델피아에서 4년 공부하면서 섬겼던 필라 기쁨의 교회에서 한블락 떨어진 곳에 안디옥교회가 있었기에 늘 그 앞을 지나다녔고 호목사님을 가까이서 여러 번 뵈었고 그 분의 설교를 자주 들었던 기억을 가지고 있습니다. 특별히 제가 부임하기 전 인 2016년에 우리 교회에 오셔서 부흥회를 인도하신 특별한 인연도 있습니다. 호목사님은 한인 1세로서는 영어로…
구유와 십자가— 고현권 목사
예수님은 사람들의 흠모함을 받을 만한 영광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시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태어난 곳이 어디입니까? 빈방이 없어서 베들레헴의 냄새나는 마굿간에서 태어났습니다. 존귀한 하나님의 아들이 처음 그 몸을 뉘인 곳이 어디입니까? 마굿간의 구유였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예수님의 삶은 천대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는 사람들에게 싫어버린바 되었고, 얼굴을 외면당하였고, 멸시와 조롱을 받는 삶이었습니다. 이것을 예수님이 오시기 700년 전에 살았던 이사야 선지자가 다음과 같이 예언하였습니다.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만한 아름다운…
사도적 사명— 고현권 목사
요즘 우리 교회 수요예배는 마치 겨울 시즌의 해운대 해수욕장과 같습니다. 한손으로 꼽을 만큼의 성도들이 조촐하게 예배를 드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을 보지 않고 주님을 바라보면서 예배를 인도하고 말씀을 전하려 하지만, 한번씩 힘이 빠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말씀을 전하면서 언제 그랬냐는 듯 성령님이 주시는 힘으로 담대하게 복음을 선포합니다. 요즘 히브리서 강해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히3:1절에 보면, “우리 믿는 도리의 사도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여기서 여러분의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단어가 있습니다. 바로 예수님을 “사도”라고 한 것입니다. 여러분, 사도가 누구입니까? 예수님이 임명하신 열두…
윌리암 멕켄지 선교사님을 기리며— 고현권 목사
1885년 4월 5일은 그 해의 부활절이었습니다. 바로 그날에 제물포항(인천의 옛 이름)에 두 명의 미국 선교사 언드우드와 아펜젤러가 함께 발을 내디디면서 본격적인 한국 선교의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런데 당시 조선 조정에서는 공식적인 선교활동을 법으로 금하였기에 교육과 의료사업을 통해 간접적으로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그 결과 1885년 10월에 아펜젤러의 사택에서 정동제일교회가 시작되었고, 1887년에는 언드우드에 의해 새문안교회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은 이들 선교사들이 들어오기 전인 1883년에 이미 한국 최초의 교회가 황해도 장연군 소래땅에서 한국인에 의해 설립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그 교회 이름이 바로 소래교회입니다. 이 교회를 세운 이는…
추수감사절을 잘 보내는 방법— 고현권 목사
구약성경에 보면, 유대 달력으로 7월 15일부터 한주간동안 초막절을 지키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절기는 수장절(收藏節, Feast of Ingathering)이란 이름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문자 그대로 곡식을 추수하여 저장한 후에 추수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즐거워하는 절기이기에 이런 이름이 붙은 것입니다. 그런데 이 절기와 관련하여 하나님이 특별히 요구하시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주신 복을 특별히 연약한 자들과 함께 나누고 기뻐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너희 타작 마당과 포도주 틀의 소출을 수장한 후에 칠일 동안 초막절을 지킬 것이요, 절기를 지킬 때에는 너와 네 자녀와 노비와 네 성중에…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할 수 있느냐?— 고현권 목사
어김없이 맞이하는 추수감사주일입니다. 이번 추수감사 주일 칼럼은 무엇을 적을까 고민하다가 작년 추수감사주일 설교 노트를 보게 되었습니다. 다시 읽어본 설교 내용이 참 좋아서 그중 일부를 나누어 보고자 합니다. 제 아내의 최대 불만은 자신의 키가 작다는 것입니다. 제가 보기에는 딱 좋은 사이즈인데, 본인은 늘 키에 대해 불만이었습니다. 그래서 제 딸들이 태어날 때마다 기도하였습니다. 성질은 자신을 닮고, 키는 아빠를 닮게 해달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아이들의 다리를 매일마다 열심히 주물렀습니다. 그런데 그게 뜻대로 되지 않더라고요. 예수님은 염려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