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s by James/k (Page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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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바라기 : 고현권 목사”

러시아의침공으로전화속에휩싸인우크라이나를생각하면서마음이너무나힘들었습니다.그러다가우크라이나를상징하는꽃이 해바라기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동유럽의 곡창지대인 우크라이나의 넓은 평원을 뒤덮는 해바라기가 장관이라고합니다. 우크라이나와 해바라기를 생각하다가 문득 떠오른 영화가 “해바라기”(1970 년)이었습니다. 이탈리아 출신의 당대최고의 여배우였던 소피아 로렌이 주연한 영화로 유명합니다. 그런데 사실 이 영화는 1970 년대에는 한국에서 상영이금지되었습니다. 반공을 국시로 했던 박정희 정부가 내건 상영금지의 명분은 이 영화의 촬영지가 구(舊) 소련땅이었기때문입니다.그러다가1982년에이르러상영금지가풀리고수입이허용됨으로국내에상영되었습니다.영화의제목이해바라기인것은해바라기에담긴의미때문입니다.해바라기는‘기다림’을상징합니다.왜냐하면해바라기꽃은이름 그대로 늘 해를 바라보면서 피기 때문입니다.이 영화의 시작 배경은 제2차 세계대전입니다. 이탈리아 군대 복무 중에휴가를나온한청년이한여인과만나사랑을합니다.그래서휴가중에결혼을합니다.당시이탈리아법에는군인이결혼을하면12일을신혼휴가로준다고합니다.그들의바램은그사이에전쟁이끝나면하면것이었습니다.그러나전쟁은계속되었고,다시 군대로 간 남편은 러시아 전선에 투입되었다가 전사하였다는 통보를 받습니다.그러나 소피아 로렌이 열연한 여주인공조반나는남편이결코죽지않고그어디엔가에살아남았을것이라는믿음을가지고기다립니다.전쟁이끝나고국제질서가안정이되자조반나는소련외무성에비자를신청하여남편을찾아떠납니다.그때에인상적인장면이전사자들이묻힌땅에피어난 해바라기밭입니다.…

“확신을가지고 : 고현권 목사”

히브리서4장16절에보면이런말씀이나옵니다.“그러므로우리가긍휼하심을받고때를따라돕는은혜를얻기위하여은혜의보좌앞에담대히나아갈것이니라” “은혜의보좌”에나아간다는것은하나님앞에나아가는것을뜻합니다. 그런데은혜의보좌앞에나갈때에우리에게요구되는것은무엇입니까? 그것은“담대히” 나가는것입니다. 일반적으로“담대하다”는말은“용감하다. 겁과두려움이없는용감한마음을가지다”는뜻입니다. 그런데, 이것을영어성경으로보면, “with confidence” 즉“확신을가지고”입니다.하나님의은혜의보좌에우리가들어가서긍휼과때를따라돕는은혜를구할수있는것은무엇때문입니까? 예수님이우리를위하여행하신일에대한확신때문입니다. 히브리서10장19-20절을보겠습니다. “그러므로형제들아우리가예수의피를힘입어성소에들어갈담력을얻었나니,그길은우리를위하여휘장가운데로열어놓으신새롭고산길이요휘장은곧저의육체니라”예수님의십자가대속의죽음으로인해하나님께로나아가는길이활짝열린것입니다. 우리에게요구되는것은오직하나, 이것에대한확신을가지고나아가는것입니다.그러면우리가언제은혜의보좌앞으로나아갈까요? 이와관련하여주목할표현이“때를따라”입니다.이것을영어성경으로보면, “inour time of need”라고되어있습니다.우리에게있어서하나님의도우심이필요치않는때는단한순간도없습니다.그러기에우리는언제나하나님앞에나가서구해야하는것입니다. 이것을표현하는말이바로“쉬지말고기도하라”입니다. 이것은시간적으로끊임없이계속기도하라는의미가아닙니다. 도리어모든일에전적으로하나님을의지하는마음으로기도하라는것입니다. 구약시대는아무나지성소에들어가지못하고오직대제사장만이들어갈수있었습니다. 그것도일년에단한차례7월10일대속죄일에만희생제물의피를들고들어갈수있었습니다. 그런데참대제사장이신예수님의십자가대속과천상에서의중보사역으로말미암아우리는언제든지은혜의보좌앞에들어갈수있게된것입니다. 예수님이휘장곧자신의몸을찢어열어놓으신길을통해은혜의보좌앞으로나아가고계십니까?

“열납됨의 여부 : 고현권 목사”

아담과하와에게두아들이있었습니다.큰아들가인은농부가되었고,둘째아들아벨은목자가되었습니다.때가되어하나님께제물을바칠때에가인은땅의소산을드렸고,아벨은양의첫새끼를드렸습니다.그런데아벨의제물은열납(悅納)된반면,가인의제물은열납되지않았습니다.가인의제물이열납되지않은이유에대해어떤이들은하나님이원하시는제물로제사를드리지않았기때문이라고주장합니다.하나님이원하시는제사는희생제물의피를드리는제사인데,이원칙을버리고가인이땅의소산으로제물드렸기에열납되지않았다는것입니다.그러나이것은성경적으로틀린생각입니다.레위기2장에보면,소제(素祭,grain offering)라는제사형식이나옵니다.문자그대로곡물을가지고하나님께제사드리는방법입니다.소제를받으신하나님의반응이레위기2:2절에이렇게묘사되어있습니다.“이는여호와께향기로운냄새라!”심지어레위기5장에보면,속죄제사를하나님께드림에있어서양은커녕비둘기조차속죄물로드릴형편이못되는극빈층에게는고운가루를대신바치도록하였고,하나님은이를속죄제사로인정하셨습니다.따라서가인이곡물로제사를드렸기에열납되지않았다는것은틀린접근입니다.여기서우리가주목해야할것은제물을드리는자와제물이함께묶여서언급된다는것입니다.“여호와께서아벨과그의제물은받으셨으나가인과그의제물은받지아니하신지라”(창4:4-5) 이것은예배자와예배는 결코분리할수없다는사실을보여줍니다.하나님이우선적으로보시는것은제물이아닌예배자의중심입니다.만일그사람의마음의중심에하나님을향한경배의마음과거룩한삶이없다면그제물이아무리대단할지라도하나님은결코열납하실수없다는것입니다.창4:7절에서확인되는가인의문제는무엇입니까?“네가선을행하면어찌낯을들지못하겠느냐선을행치아니하면죄가문에엎드리느니라죄의소원은네게있으나너는죄를다스릴찌니라.”가인에게는“선함” 곧하나님을기쁘시게하는삶이없었다는것입니다.하나님을기쁘시게하는삶이없는자의제물은하나님이열납하지않으신다는것입니다.엄밀한의미에서열납되지않은것은제물이아니라가인자신입니다.과연오늘자신의예배는하나님앞에어떻게될지를살펴보시기바랍니다.

“함께 삽시다! : 고현권 목사”

작년가을에넷플릭스를통해공개된한국드라마“오징어게임”이전세계적으로공전의히트를기록했습니다.이드라마를통해가장주목받은배우는78세의현역배우인오영수씨입니다.그래서올해골든그로브상남우조연상을수상했습니다.그에게이큰영예를안겨준오징어게임드라마속에서오영수배우가연기한오일남할아버지의말이한동안회자되었습니다.“우리는깐부잖아!”드라마를보면상대방을짓밟아야내가사는생존게임의비정함이잘드러납니다.어제까지한편이었던사람들이오늘에는서로를죽음으로내모는일을스스럼없이자행합니다.그런데이런분위기에서도자신의것을기꺼이내어주는오일남할아버지의모습이참감동적이었습니다.깐부라는말의유래에대해지배적인견해는“주식”(株式)을뜻하는일본어 가부시키에서나왔다고합니다.서로지분을나누는친한사이라는뜻이랍니다.사무엘상30장에보면다윗이400명의부하들을이끌고기습하여아말렉족속을격파하고엄청난전리품을거둡니다.원래다윗의부하는600명이었는데200명의부하들이오랜여정으로인해그만녹초가되는바람에함께할수없었습니다.그런데큰승리를거둔400명중의일부악한자들이싸움에동참하지못했던200명에게면박을주었습니다.그러면서이들에게는그어떤전리품을나눠줄수없다고주장합니다.이에다윗이한말이무엇입니까?“오늘우리가이큰승리를거둔것은우리가잘나서가아니라하나님이우리를도우셨기때문에가능했던것이다.그러기에이전리품을싸움에나간자들만독차지하는것은잘못이다.전방에서싸운자들이나후방에서돕는자들이나동일하게분배하는것이하나님보시기에합당한일이다.”오순절날성령이충만하게임한결과로맺은열매가무엇입니까?자신의소유를자기만을위해쓰지않고다른이들을위해기꺼이자원하는마음으로내놓는바람에이른바“유무상통”(有無相通)의놀라운일이일어나게된것입니다.내게주신것으로다른이들을풍성하게하는것,이것이하나님나라의모습입니다.옆에있는분들은경쟁자가아닌동역자입니다.내가살기위해짓밟아야할대상이아니라,함께살고함께하늘의유업을받을동반자입니다.

“겉옷을벗어버리고 : 고현권 목사”

지난주보칼럼에제가바디매오이야기를했습니다.맹인이었던바디매오는예수님이자신이살고있는여리고를지나간다는이야기를듣고서예수님께자신의눈을뜨게해달라고간청합니다.이에예수님이가던길을멈추고그를불렀습니다.그러자바디매오가취한행동이무엇입니까?“겉옷을내어버리고뛰어일어나예수께나아오거늘”(막10:50) 얼핏보면별의미가없어보이지만실은대단히중요한표현입니다.여기나오는맹인의겉옷은단순한외투가아닙니다.이것은당시당국이구걸을공식인정한다는일종의허가증이었습니다.그런의미에서바디매오에게있어서겉옷은그의생명줄같은것이었습니다.그런데예수님의부르심에그가그소중한겉옷을내어버리고뛰어간것입니다.이것은예수님을만나새로운삶을살려면,자신의과거와단절해야한다는것을의미합니다.옛삶이주는달콤함을붙들면서새삶을추구한다는것은불가능한것입니다.예수님과함께새삶을살려면과거의자신과단절해야한다는것입니다.이것은구원받은신자의삶에그대로적용되는문제입니다.몸을씻고새옷을입기전에반드시해야할것은때묻고냄새나는헌옷을벗어버려야하듯이, 새사람으로살기위해서는옛사람을벗어버려야마땅한것입니다.결국결단과선택의문제입니다.이것을잘보여주는그림이바로갈멜산사건입니다.바알과아세라우상을섬기는850명의선지자들과대결하던엘리야가이스라엘백성들에게외쳤던말이무엇입니까?“너희가어느때까지두사이에서머뭇머뭇하려느냐여호와가만일하나님이면그를좇고바알이만일하나님이면그를좇을찌니라”(왕상18:21) 여호와도좋고바알도좋은것은더이상있을수없다는것입니다.진정하나님의백성으로살려면바알과의단절이절대적으로요구된다는것입니다.혹시이것이저와여러분의모습이아닌지요?바디매오가예수님을따르기위해서자신의과거삶을상징하는“겉옷”을벗어버려야하듯이,이스라엘백성이여호와를하나님으로섬기기위해서바알숭배를단절해야하듯이,새사람으로살아가기위해서옛사람을벗어버려야하는것입니다.예수님과새삶을살기위해서단절해야하는나만의“겉옷”은무엇입니까?

“바디매오” : 고현권 목사

“바디매오”하면그앞에꼬리표처럼붙은말이“맹인”입니다.우리입에는“소경”이라는말이더익숙합니다만,사실소경이라는말은앞을못보는시각장애인을낮잡아부르는좋지못한표현이라고합니다.그러니맹인이라고부르는것이좋겠습니다.성경에보면바디매오는여리고에서구걸하던맹인이었습니다.그런데엄밀한의미에서그는이름이없는존재였습니다.이게무슨말일까요?예수님당시팔레스틴지역은아람어라는히브리어사촌쯤되는언어를공용어로사용하였습니다.예수님이하나님께기도할때에“아바아버지여”라고기도하셨지요.“아바”라는말은어린아이가 자신의아버지를친근히부르던아람어입니다.아람어로“바”는“아들”이라는뜻입니다.그러니“바디매오”는“디매오란사람의아들”이란뜻이되는것이지요. 이여리고의맹인은자신의이름이없이그냥그의아버지디매오의아들로만불려진것입니다.왜그는자기이름이없었을까요?추측해보면아이를낳고보니맹인이었습니다.아마도사람구실할수없다생각했겠지요.그래서이름을지어주지않은것입니다.이름이없다는것은그의존재자체를무시하는것과다름이없습니다.그렇게바디매오는그냥빌어먹다가죽으면끝나는인생으로여기고살아간것입니다.그러던어느날,나사렛예수가이곳을지나간다는소식을듣고서바디매오의가슴이뛰기시작했습니다.수많은병자들, 눈먼자들,저는자들을고치신예수님이자신이사는곳을통과하시는것입니다.이기회를놓치면안된다고생각하고힘을다해소리쳤습니다.“다윗의자손예수여나를불쌍히여기소서!”그러자주위사람들의책망이쏟아졌습니다.“잠잠해! 네주제에여기가어디라고?”그러나바디매오는아랑곳하지않고더욱소리를크게지르면서자신을불쌍히여겨달라고외쳤습니다.이에예수님이가던걸음을멈추고그의소원을들어주셨습니다.그결과그의눈이밝아져보게되는일이일어났습니다.그런데여기서주목할것은그의기도가응답된이유입니다.많은경우,그의열심과간절한부르짖음에주목합니다.물론중요합니다.그러나그의기도가응답받은유일한근거는“주님의긍휼히여기심”이었습니다.이것을알기에그가부르짖었던간구가“나를불쌍히여기소서”였던것입니다.바디매오처럼기도하시기바랍니다.“주여,나를긍휼히여기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