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칠과삼(功七過三) 고현권 목사

공칠과삼(功七過三) 고현권 목사

중국의 작은 거인이라고 불리는 덩샤오핑(鄧小平, 1904-1997)은 마오쩌둥(毛澤東)이 일으킨 문화혁명 때문에 모든 권력을 잃고 혹독하게 핍박을 당했던 인물입니다. 더군다나 자신의 분신과도 같았던 장남이 고문을 받다가 이기지 못하고 3층 건물에서 뛰어내리는 바람에 척추를 다쳐서 한평생 휠체어에 의지하는 장애를 입게 되었으니, 마오쩌둥에 대한 원한이 얼마나 컸겠습니까? 마오쩌둥이 죽고 덩샤오핑이 집권하게 되자 모든 사람들은 그가 처절하게 복수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덩샤오핑은 마오쩌둥을 역사에서 지워버린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의 공로를 인정하고 높였습니다. 그것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 천안문(天安門)에 걸린 마오쩌둥의 대형 사진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덩샤오핑에게 질문했습니다. “그렇게 당했는데 억울하지 않습니까?” 그가 말했답니다. “물론 섭섭한 일이 왜 없겠습니까? 분명 그에게 과오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가 세운 공에 비하면 약과입니다.” 그러면서 그가 언급한 말이 “공칠과삼”(功七過三)입니다.  마오쩌둥이 잘못한 과오만 바라보지 말고, 그것보다 훨씬 더 많은 그의 공로를 인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의 넉넉한 결단으로 인해 중국 지도층에 만연했던 반복되던 복수의 사슬이 끊어졌다고 역사가들은 평가합니다.

    이 “공칠과삼”이라는 문구가 요즘 제 마음을 떠나지 않고 있습니다. 종종  “공칠과삼” 정도가 아니라 “공십과영”(功十過零)의 절대 기준으로 남을 평가하고 있는 경우를 봅니다. 다른 사람이 자신에게 아홉가지 잘 하다가도 한 가지 실수하면, 그 아홉은 다 잊어버리고 그 하나의 잘못으로 그 사람을 평가해버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옳지 않은 것은 예수님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공영과십”(功零過十)인 우리 죄인들을 품고 용납하셨기 때문입니다. 아홉가지 허물이 있어도, 겨우 한 가지 괜찮은 것 때문에 품고 칭찬해줄 수 있는 그런 공동체? 너무 욕심인가요? 그건 무리이겠지요? 그렇다면 덩샤오핑이 제시한 세상의 기준 “공칠과삼”은 해볼만하지 않을까요? 상대방의 단점보다 더 많은 장점에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그런 의미에서 제가 우리 교회 성도들 칭찬 하나 하겠습니다. 이영규 성도님을 심방하는 가운데 들은 이야기입니다. 아내인 박정아 성도님이 근처에 있는 교회를 2년간 다녔는데, 그 누구도 다가와서 환영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 교회에 와보니 성도들이 얼마나 다정하게 반겨주는지, 그 사랑에 감격하여 신앙생활을 잘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알고 보면 너무나 좋고 사랑스런 교회입니다! 우리 교회에 대한 자부심도 회복하시길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