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수감사절을 보내며

추수감사절을 보내며

고현권 목사    

캘리포니아에 사는 처제가 사진을 한 장 보냈습니다. 비를 맞으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길게 늘어선 사진이었습니다. 설명을 들어보니, 터키를 잘 굽기로 유명한 어느 파이 전문점에 미리 주문을 하고 당일날 오전에 찾으러 갔는데, 사람들이 너무나 많아서 한 시간 이상을 기다려서야 비로소 받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저희 가정도 터키를 한 번 구워볼까 생각도 했지만, 엄두가 나지 않아서 포기하고 대신 양념 통닭을 택했습니다. 통닭을 주문해서 먹는 사진을 제 아내가 찍어서 한국에 계신 부모님 카톡으로 보내드렸더니, 금방 장인어른이 반응하셨습니다. “내 딸은 안 먹고 사진만 찍고 있구나.” 처음에는 웃어 넘겼습니다. 그런데 그 속에는 딸에 대한 아버지의 마음이 담겨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아내에게 치킨을 쥐어주고 사진을 찍어서 보내드렸더니 만족해 하셨습니다.  

추수감사절에 대해서 딸들과 대화를 나누던 중에 요즘 미국역사 수업을 듣고 있던 둘째 딸이 추수감사절 이면에 들어 있는 백인들의 미국 원주민인 인디언들에 대한 죄악상에 대해서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런 것을 덮어버린 채 추수감사절을 보내는 것은 좋지 못하다는 논리를 전개했습니다. 이에 대해 나름대로의 반론을 제기한 셋째 딸과 다소 논쟁을 벌였습니다. 한참을 듣고 있던 제 아내가 중립적인 입장을 취했습니다. “백인들의 죄악상은 분명 비판받아야 마땅해. 그러나 추수감사는 근본적으로 성경에 그 기원을 두고 있기에, 한해를 돌아보면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는 취지로 추수감사절을 보낸다면 문제 없지 않을까?”  감사하게도 다들 수긍해주는 바람에 대화가 잘 마무리되었습니다.

그날 밤에 잠자리에 누워서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모든 일에는 명암(明暗)이 있고, 장점과 단점이 함께 내재해 있습니다. 당연히 어두운 면과 단점은 지적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자칫 잘못하다가는 그 이면에 있는 밝은 면과 장점을 놓치는 우를 범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른바 더러운 목욕물을 버리려다가 그 속에 있는 아이까지 버리게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좋은 점과 아쉬운 점이 함께 드러날때에 방점을 좋은 점에 찍는 의지적인 결단이 정말 중요하다고 봅니다. 참 많은 교훈을 안겨준 고마운 추수감사절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