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까지?” : 고현권 목사

“언제까지?” : 고현권 목사

지금 미국이 대단히 시끄럽습니다. 미네소타의 미네아폴리스에서 일어난 끔찍한 사건 때문입니다. 한 백인 경관이 위조된 20달러 지폐를 사용했다는 의심을 받은 한 흑인 남성을 체포하면서 저지른 죄악이 온 미국사회를 분노에 빠지게 만들었습니다. 이미 수갑을 뒤로 채우고 땅바닥에 꿇린 상태인데도 불구하고, 무릎으로 사정없이 짓눌러 사망에 이르게 한 것입니다. 이미 숨이 막혀 의식을 잃었음에도 불구하고 3분 이상을 계속 짓눌렀다니, 정말 악마가 아니고서는 그럴 수 없는  것입니다. 왜 이런 짓을 하게 된 것일까요? 그것은 일부 백인들의 마음 속에 자리잡고 있는 흑인 내지 유색 인종에 대한 인종우월주의때문입니다.

20년전 웨스트민스터신학교에서 “개혁주의 정치이론”이라는 과목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수강생은 저와 한 흑인 목사님을 빼고는 모두 백인 신학생들이었습니다. 어느날 흑인 목사님이 왜 19세기 미국에서 가장 성경적이라고 자부하였던 남장로교회가 노예제를 적극 지지하게 되었는가에 대해 주제 발표를 하였습니다. 남장로교회의 신학자들은 노예제의 정당성을 함에 대한 노아의 저주에서 찾았다고 합니다. 노아가 포도주에 취해 발가벗고 잠이 들었을 때에, 이를 본 둘째 아들 함이 아버지의 수치를 덮지 않고 발설합니다. 이것 때문에 함이 아버지 노아의 저주를 받았는데, 함의 후손이 바로 아프리카 흑인들인 것입니다. 그러니 저주받은 흑인들을 노예로 사용하는 것은 성경적이라는 논리를 퍼뜨렸다고 합니다. 과연 그럴까요? 창9:25절을 보면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가나안은 저주를 받아 그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되기를 원하노라” 잘 보시면, 저주의 대상은 함의 후손들 중에 오직 ‘가나안’에게만 적용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함의 모든 후손에게 적용시키는 의도적인 왜곡을 만든 것입니다. 그날 백인 신학생들은 자신의 선조들의 왜곡된 주장에 대해 모두 가슴 깊이 반성한다는 고백을 하였습니다.

모든 인류는 피부색깔에 관계없이 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존귀한 존재입니다. 그리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은혜는 혈통과 피부와 지역과 성별과 신분을 뛰어넘어 동일하게 주어집니다. 미국의 교회들, 특별히 백인 교회들이 이 일에 적극 나서야 합니다. 다시는 이런 반성경적인 죄악들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 안에도 은연 중에 내재되어 있는 인종차별적인 인식도 이참에 십자가에 못박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