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의 강권!—고현권 목사

성령의 강권!—고현권 목사

회자정리(會者定離)라는 말이 있습니다. “만났다가 이별하는 것이 인생사의 정한 이치”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정말 사랑하고 마음을 나누었던 이들과의 작별은 눈물과 고통을 수반합니다. 그 한 장면이  사도행전 20장에 나오는 바울과 에베소 교회의 장로들 간의 작별입니다. 이것이 마지막이며 아마도 앞으로 다시 볼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 바울은 가슴 절절한 이야기를 나누고 마지막에는 눈물로 기도하면서 떠나갑니다. 이 부분을 읽을 때마다 가슴이 먹먹해 집니다. 그 중에서 제 눈길을 끄는 표현이 있습니다. “보라 이제 나는 심령에 매임을 받아 예루살렘으로 가는데”(행20:22) 이 표현이 오해를 불러 일으킬 수 있는데 정확한 뜻은 성령의 강권하심을 받아 예루살렘으로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원래 예루살렘에 갈 계획이 없었는데, 성령께서 강권하시기에, 자기 계획을 접고 순종하기로 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령의 강권하심에 순종한 결과는 무엇입니까?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거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행20:23) 아니, 어떻게 이럴 수 있습니까? 순종했으면 축복을 주셔야지, 결박과 환난이 웬 말입니까?

그런데 바울의 반응에 주목할 필요할 필요가 있습니다. 행20:24절입니다.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바울이 인식한 자신의 사명은 무엇이라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거하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 사명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생명을 조금도 귀하게 여기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순종과 헌신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요구 받습니다. 우리가 말씀에 순종할 때에 그 마음 속에 이런 기대감이 있을 수 있습니다. “내가 내 뜻을 내려놓고 하나님께 순종하며 헌신했으니 축복하실 것이다.” 물론, 하나님은 순종을 귀하게 보십니다. 그리고 그런 자를 축복하십니다. 그러나, 순종하면 자동적으로 축복이 보장되고, 모든 일이 형통하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순종의 근본 목적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데 있지, 내가 복 받기 위해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최고의 행복은 내가 잘 되고 성공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최고의 행복과 영광은 우리를 통해 주님 뜻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도의 형통이고 성공입니다. 때로 힘든 말씀에 대한 순종의 근본 출발은 우리의 부르심 곧 사명에 있어야 합니다.